울산지법청사.(사진=전용모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당시 술에 취한 피해자를 태운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태워 줄 계약상 주의의무가 있고, 그곳은 자동차전용도로로 자동차만 통행하는 곳으로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하며 도로구조상 걸어서는 쉽게 그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는 자정에 가까운 야간이고 가로등이나 다른 불빛이 없어 시야가 매우 불량한 관계로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장소와 상황에 승객을 하차시킬 경우 진행하는 다른 자동차에 의하여 사고를 당하거나 여타 다른 위해요소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과 특히 술에 취한 승객의 경우 사고와 행동이 정상적이지 못해 보호자의 부조가 필요한 상황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2019년 4월 19일 0시경 울주군 청량읍 율리에 위치한 자동차전용도로 온산 방면 두현2교 인근 갓길 부근에 이르러 술에 취한 피해자가 하차를 요구하면서 달리는 택시의 차량 문을 열려고 하자, 갓길에 택시를 세워 피해자를 하차시키고, 하차한 피해자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방치함으로써, 같은 날 0시 30분경 피해자가 약 30분간 방향감각을 잃고 자동차전용도로를 헤매다가 하차지점으로부터 약 600m 떨어진 자동차전용도로 두현1교 부근을 2차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D가 운전하는 스포티지 승용차의 조수석 앞 범퍼 부분에 들이받혀 즉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앞서 피해자는 2019년 4월 18일 오후 8시 40분경 혈중알코올농도 0.063%의 술에 취한 상태로 자동차를 운전한 사실로 경찰에 단속됐는데 당시 피해자가 작성한 주취운전자 정황 진술보고서에는 소주 1명 반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어 오후 9시 44분경 직장의 반장에게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 된다며 20여분 간 상의했다. 그후 대리운전을 불러 피해자 거주지 근처인 울산 중구로 이동해 차량을 주차한 뒤 가게서 혼자 소주 한병 반을 마신 후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다.
피해자를 들이받은 D는 제한속도를 초과해 진행한 과실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죄로 약식명령이 청구돼 2020년 4월 23일 울산지방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약식명령을 발령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한 결과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유기치사의 죄책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피고인에 대한 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택시기사인 피고인이 야간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승객인 피해자가 하차하게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해 부조를 요하는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음주시간과 음주량만으로 피해자가 특별히 과음 내지 폭음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택시 영상을 보면 피해자의 걸음걸이나 행동만으로 택시 탑승 당시 만취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목적지를 두 차례 변경했다는 점만으로는 피해자가 만취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 있었다고 단정 할 수도 없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가 화물차의 운전기사라서 그곳을 최종목적지로 삼은 것으로 생각하고 화물차를 약간 지나쳐 정차했는데, 그 즉시 피해자는 미리 준비한 지폐를 택시요금으로 주고 내려 화물차쪽으로 걸어갔다'는 취지로 진술해 그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자료가 달리 없는 점 △피해자가 하차한 갓길은 평소에도 대형 화물차 등이 상시 주차돼 있는 장소로 다른 구간의 갓길에 비해 그 위험성이 상당히 적어 보이는 점 △그 장소가 자동차전용도로의 일부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그 요구를 묵살하고 운행을 계속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