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감동 주는 중견법관들 퇴임사

“한기택 부장판사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 기사입력:2006-02-21 17:06:40
최근 법복(法服)을 벗고 하나둘씩 소리 없이 법원을 떠나는 중견 법관들이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에 올린 퇴임사가 그들의 빈자리를 느낄 만큼 잔잔한 감동을 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퇴임을 앞두고 고인이 된 두 친구의 묘소를 다녀왔다는 서울중앙지법 이홍철 부장판사의 퇴임사는 특별하다. 법관 시절 ‘가장 판사다운 판사’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친구이자 존경했던 故 한기택 부장판사의 생일날 퇴임식을 하게 돼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숙연해 진다.

◈ 이홍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지난 17일 법원을 떠난 이홍철 부장판사의 퇴임사는 “지난 2주간 주말을 이용해 두 친구의 묘소에 다녀왔다”고 시작한다.

이 부장판사는 “한 친구는 25년 전인 81년 6월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묘소에 다녀 온 적이 있는 故 김태훈 열사”라며 “그는 정권에 눈이 멀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신군부에 항거하기 위해 광주민중항쟁 1주기 때 서울대 교정에서 고귀한 목숨을 스스로 바친 고교 동창으로 그 친구의 죽음은 법관생활을 하는 동안 제 마음 속 기둥이 돼 주었다”고 소개했다.

이 부장판사는 “다른 한 친구는 작년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故 한기택 부장판사인데 법관생활을 한 지 5년쯤 됐을 때 제2차 사법파동이 있었을 당시 친구의 권유로 뜻을 같이 했다”며 “지금까지 그 때 뜻을 같이 했던 법관들의 서명원본을 소중히 보관하면서 항상 그때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면서 “법관으로서 존경했던 故 한기택 부장판사의 생일날인 오늘(지난 17일) 명예퇴임을 하게 돼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고 말해 심금을 울렸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에 있던 23년간 제 역량과 사명을 다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저를 인도했던 두 친구가 만약 살아 있다면 아마도 부족했던 저를 껴안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리라고 생각한다”고 가슴에 묻은 친구들에 대한 각별한 믿음을 표시했다.

그는 “이젠 무대가 됐던 법원을 홀홀히 떠나지만 앞으로도 항상 두 친구가 하늘에서 지켜보면서 때로는 저를 꾸짖고 때로는 격려하리라고 믿는다”며 “선후배 법관들과 법원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저를 채찍질해 주길 믿는다”고 당부했다.

◈ 이홍권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홍권 부장판사는 “28세 때 판사로 임명받고 ‘하늘이 준 도끼를 등에 지고 일한다’는 법관직에 24년 봉직했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법원에서 보낸 셈”이라며 “그 사이 옮겨다닌 법원은 13군데, 배석판사로서 모셨던 부장님은 모두 7분, 재판장으로서 같이 일했던 배석판사들은 28명이 되는 등 너무 많아 다 셀 수가 없다”고 세월의 무상함을 대신했다.

이 부장판사는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과 정열을 재판에 쏟으면서 좋은 법관이 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부족한 능력과 인품으로 적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잘못했거나 후회스러운 일들만 자꾸 생각이 난다”고 자세를 낮췄다.

아울러 그는 “특히 같이 일하던 젊은 법관들이 매일같이 과로 속에서 밤늦도록 일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하루빨리 법관들이 격무에서 해방되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절이 오기를 대법원장에게 부탁드린다”고 간청하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제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사진과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지난 일에 대한 벅찬 감회와 그동안 도와준 법원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정을 억누르기 어렵다”며 “‘사람은 낮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밤까지 기다려 보아야 한다’는 말처럼 제 생애의 낮은 과연 어떤 밝기로 평가받을지 밤이 두려워지기도 한다”고 겸손해 했다.

◈ 김만오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

김만오 수석부장판사는 “법관생활을 돌이켜 보면 89년 동해시재선거관리와 99년 정읍지원장을 마치며 정읍명예시민증을 받았던 일, 씨랜드화재 사건, 최근 X파일 관련 불법도청테이프 방송금지가처분 사건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삶을 보는 눈도 처음에는 ‘어떤 지위로 사느냐’에서 ‘어떻게 사느냐’로 바뀐 다음 ‘어떤 지위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법관생활 동안 가치관이 변화했다고 덧붙였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법관생활을 하는 동안 능력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겸손함과 정직한 마음으로 형평을 잃지 않는 판단을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부족한 능력의 범위에서나마 재판업무에 최선을 다 했느냐는 물음에 대해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고 자세를 극도로 낮췄다.

그는 특히 “이제 개인적인 큰 허물은 덮어주고 작은 허물은 드러나지 않도록 항상 보호해주던 온실 같은 법원을 떠나,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면서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정글과 같은 사회로 들어서려 한다”며 “무엇보다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고 법원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앞으로도 운명이 정해 준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사회생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속에 항상 자중자애하면서 매사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자세로 새 출발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시집가는 딸의 심정으로 친정인 남부지법에 제 마음의 한 자락을 남겨 두고 정든 법원을 떠나간다”고 여운을 남겼다.

◈ 손윤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손윤하 부장판사는 “급변하는 현대사 속에 재판업무를 수행하면서 과거 정치권력의 희미한 압력, 시위대의 격렬한 구호, 언론의 여론몰이 등 재판의 독립을 저해하는 외부적 요소는 언제나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그러나 국민의 권리와 의무만을 생각하며 일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손 부장판사 역시 “최상의 재판은 아닐지 몰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사사로움은 없다”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행여 부족해 넓게 살펴보지 못한 점이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이어 “지금도 재판의 독립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며 “외부적 요소는 법원에 남아 있는 법관들과 법원가족들이 흔들림 없이 대처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법관 및 법원가족들의 위축된 사기와 자긍심의 실추, 법원 내부의 인적갈등 요인 등 내부적 문제들도 있다”며 “국민은 정당한 재판절차와 공평한 판결, 민원업무에서 친절과 봉사를 희망하고 있는데 국민의 희망이 이뤄지려면 법관과 법원가족의 자긍심 고양과 처우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 부장판사는 “국민에게 신뢰받고 국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법부, 국민의 가슴속에 원칙과 공평함을 깊게 각인시킬 수 있는 사법부가 되도록 남아 있는 법관 및 법원가족들의 노력을 기대한다”고 신뢰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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