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군 사망자는 총 93명이다. 차량·익사·폭발 등 안전사고는 20명(21.5%)에 불과했다. 반면, 군기사고로 분류되는 자살·총기·폭행·기타 사망은 73명(78.5%)이었다. 특히 자살로 인한 사망은 70명(전체의 75.3%)으로, 단일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10년(2013~2022년)간 군 사망 원인 통계를 살펴보면, 자살 비율은 최소 61.3%, 최대 80.6%로 매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군 자살 원인은 복무 부적응, 폐쇄적 군 환경, 개인 심리적 요인(스트레스) 등으로 다양하게 지적돼 왔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주로 부대 적응 실패와 우울·스트레스의 상관관계에 집중했고, 자살·자해 생각과의 직접·간접 경로를 동시에 분석한 사례는 드물었다.
전창영(동국대)·박희균(세명대)·이창한(동국대) 연구팀은 '군 장병의 부대적응이 자살·자해생각에 미치는 영향: 스트레스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한국경찰학회보>)를 통해 새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전창영·박희균·이창한(동국대·세명대·동국대) 연구팀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군 장병의 부대 적응이 자살·자해 생각을 직접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완화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디지털 기반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 체계와 군 간부의 리더십·소통 역량 강화, 병영문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연구진은 군 병사의 자살·자해 생각(ideation)에 부대 적응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매개로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했다. 2024년 6월, 국방부 조사본부 소속 장병 404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연구에서는 '자살·자해 생각'의 경험 빈도를 종속 변수로 삼았다. 또 '부대 적응'을 다음 네 가지 요인으로 나눠 측정했으며, 스트레스를 매개 변수로 설정해 구조 방정식 모형을 검증했다.
① 심신 상태(틈 시간의 자기개발 활용, 최근 신체 컨디션 등)
② 임무 수행 의지(위기 시 의무기간 이상 복무 의사, 즉시 참전 의지 등)
③ 직책·직무 만족(직책의 중요성 인식, 직책 변경 의사 없음 등)
④ 군 간부에 대한 인식(부사관 임무 수행 역량, 함께 싸우고 싶은 부사관 수 등)
■ "스트레스는 자살·자해 생각을 증가시키는 핵심 변수"
분석 결과, 부대 적응의 직접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신 상태'와 '군 간부에 대한 인식'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 반면, 스트레스는 자살·자해 생각을 증가시키는 핵심 변수로 확인됐다.
즉, 부대 적응이 곧바로 자살·자해 생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완화 과정을 거쳐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 실증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장병 스트레스의 체계적 예방·관리가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연구진은 자살 예방을 위해 네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1. 디지털 기반 스트레스 관리 확대
최근 장병의 휴대전화 사용이 단계적으로 허용된 만큼, 모바일 앱을 활용한 스트레스 자가평가·상담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이미 2023년 9월부터 '디지털 마음건강 서비스'가 시행 중이며, 생성형 AI를 활용한 실시간 위험 알림·상담 연계 체계도 고려할 수 있다.
2. 입대 초기 '부대 적응 프로그램'의 표준화
초기 적응은 이후 군 생활 전반의 스트레스 수준과 직결된다. 따라서 훈련소·신병교육대 교육과정에 부대 적응 프로그램을 정식 편성해,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연구진은 "적응 수준이 높아지면 스트레스가 줄고, 자살·자해 생각도 감소한다"고 밝혔다.
3. 심신 상태 개선: 체력·생활·문화
정기적 운동·체력 증진과 함께 권위적·폐쇄적 병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군인 복지실태조사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 장병 수요를 반영하고, 군인복지 기본계획에 환경·문화 개선 과제를 포함시켜야 한다. 경찰·소방 등 유사 직군의 근무환경 개선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4. 군 간부 인식 개선: 리더십·소통 역량 강화
간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스트레스를 낮추는 중요한 요인으로 확인됐다. 처우 개선, 목표 중심 리더십 훈련, 공감적 대화능력·평가 역량 개발을 위한 부사관·장교 교육 커리큘럼 도입 및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조직 신뢰 회복 → 스트레스 완화 → 자살·자해 생각 감소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 더 깊은 분석 필요
연구진은 향후 연구에서는 입대 전 가정환경, 학교폭력 경험, 부대 내 인간관계 등 개인·환경 요인을 포함해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스트레스를 세분화해 다루고, 심리검사·심층 인터뷰를 병행한다면 정책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핵심은 단순히 '부대 적응 여부'가 아니다. 적응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줄이는지가 자살·자해 생각 감소의 관건임이 확인됐다. 이제 정책은 장병의 심신 상태와 조직문화, 그리고 디지털 기반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 체계를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연구논문
전창영·박희균·이창한(2024). 군 장병의 부대적응이 자살·자해생각에 미치는 영향: 스트레스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경찰학회보, 26(6), 157-187.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