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화제가 됐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약 70%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2017; 한국노동연구원, 2017).
현행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며, 금지하고 있다.
괴롭힘 행위 요건은 두 가지다.
첫째, 지위의 우위(지휘 명령 관계에서 상위이거나 직위·직급상 상위) 또는 관계의 우위(인원수·연령·학벌·근속연수·직장 내 영향력 등으로 상대방이 저항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
둘째, 업무상 필요성이 없거나, 폭행·폭언 등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중대한 지장이 발생하는 경우. (출처: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2023.4.>).
심리치료사이자 심리학 박사인 지나 슈나이더(Gina Simmons Schneider, Ph.D.)는 심리학 전문지 <싸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를 통해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미국 직장인의 괴롭힘 실태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국내 직장인 70%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며, 피해자들은 출근 전 구토, 불면증 등 심각한 신체·정신적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괴롭힘을 개인의 악이 아닌 관계적 문제로 보고, 가해자 교육·피해자 지원·제3자 개입을 통한 해결을 제시했다. 실제 상담 사례에서는 피해자가 용기 내어 상사와 직면했을 때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기도 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직장 내 괴롭힘 연구소(Workplace Bullying Institute, WBI)'는 괴롭힘을 "반복적 학대행위: 위협·모욕·겁주기, 업무 방해, 언어적 학대"로 정의한다.
직장 내 괴롭힘 연구소(202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2%(5천2백만 명)가 직접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목격자까지 포함하면 약 7천4백만 명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가해자는 남녀 모두 가능하지만 남성이 71%로 더 많았으며, 흑인과 히스패닉 피해율은 평균보다 높다고 밝혔다.
최근 연구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불면·불안·자살 충동 같은 심각한 정신적 문제와 높은 이직률로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물론, 직접 대상이 아닌 목격자조차도 높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한 명의 '악한 상사'가 조직 전체의 신뢰와 생산성, 동기를 무너뜨리는 셈이다.
■ 괴롭힘을 부추기는 뇌와 성격의 차이
공격적 성향이 강한 가해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고통에서 쾌감을 얻기도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뇌 연결망 이상으로 죄책감이나 후회, 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며, 권력이나 즉각적 보상에 의해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쟁이 과열된 조직에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묵인되거나 오히려 조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가해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내향적이고 민감한 직원과 외향적이며 경쟁심 강한 상사가 부딪칠 경우, 성격 차이가 뇌의 현실 인식 방식에 영향을 주면서 충돌을 낳고, 결국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모호하다
일부 연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비슷한 배경을 공유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적대적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사회적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 피해자는 회피나 수동적 공격으로 대응하고, 가해자는 위협으로 맞서면서 악순환이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많은 가해자들이 과거에는 피해자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갈등 해결 전문가들은 "괴롭힘은 한 사람의 본성이 아니라 행동이며, 두 사람의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한다. 가해자를 악마화하면 '맥락 속 인간 전체'를 보지 못하고, 피해자를 무력한 존재로만 취급하면 피해자 스스로 대처할 기회를 빼앗게 된다는 지적이다.
■ 갈등 해결의 핵심은 제3자의 개입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해결을 위해 세 가지 접근을 제안한다.
- 가해자 교육: 분노·스트레스 관리, 갈등 해결, 효과적 의사소통, 문화적 다양성 훈련 등 자기관리 기술 습득.
- 피해자 지원: 자기주장, 회복탄력성, 스트레스 관리, 갈등 대처 기술을 배우도록 지원.
- 제3자 개입: 중립적 조정을 통한 구조적 문제 해결.
■ 극적인 반전, 피해자가 상사를 변화시킨 순간
캐시는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상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캐시는 짧은 연설문을 준비해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제 뒤에서 다가와 책상을 치며 물건을 던지지 마세요. 무례하고 무섭고 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에요. 저는 더 이상 고함을 참지 않을 겁니다. 최근 당신의 행동은 수치스럽고 반드시 중단돼야 합니다."
예상과 달리, 상사는 눈물을 흘리며 아내가 분노 문제로 떠났다고 고백했고, HR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캐시는 상사를 '괴물'이 아닌 상처받은 인간으로 보게 되었고, 마침내 화해의 포옹으로 갈등이 마무리됐다.
■ 괴롭힘은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할 문제
괴롭힘은 특정 개인의 '악'이 아니라, 둘 이상의 사람이 얽힌 관계적 행동이다. 피해자를 무력한 존재로만 두거나, 가해자를 단순히 악마화하는 태도는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다.
타인의 부당한 대우를 묵과하지 않고 맞설 때, 상대에게 더 나은 대인관계 기술을 배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깨진 직장 내 관계 역시 회복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도움이 필요하다면?
-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심리상담(안전보건공단): 직업트라우마센터(☎ 1588-6497)
-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예방교육(한국고용노동교육원): ☎ 031-760-7777~7779
▶ 원문 기사 출처
"How to Handle a Workplace Bully," Gina Simmons Schneider, Ph. D., 2025.09. 09. <Psychology Today>.
▶ 기타 출처
고용노동부(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게시)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