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약 0.5%~5%가 나르시시즘 성격 특성을 가지며, 50%~70%가 남성이다. 하지만 많은 나르시시스트들이 자기애적 신념과 행동을 은밀히 숨기기 때문에('은밀한 나르시시즘'), 실제 유병률 추정은 어렵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책임을 미루고 사건을 왜곡하는 동료를 만난 경험이 있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태가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의 전형적 패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사건을 재구성해 자신은 피해자, 상대방은 가해자로 몰아간다. 결국 주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난다. 심리치료사이자 심리학자인 에린 레오나드 박사(Erin Leonard, Ph. D.)가 <싸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제시한 다음 사례와 분석을 통해 나르시시스트가 어떻게 타인을 조작하고 위험에 빠뜨리는지, 그에 대한 대처법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을 왜곡해 자신은 피해자, 상대방은 가해자로 만드는 전형적 패턴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감정적 반응을 피하며, 필요시 기록을 남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고 조언한다./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지혜와 지민은 회사에서 중요 프로젝트를 맡았다. 지혜는 자신의 몫을 기한 내 마쳤지만, 지민은 마감일까지 결과물을 제출하지 않았다. 지민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결국 지혜에게 일부 업무를 떠넘겼다. 하지만 다음 마감일에도 지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지혜가 모두 마무리했다.
지혜는 프로젝트 제출 후 실망감을 표현했으나, 지민은 "집 수리로 친척 집에 머무는데 알코올 의존 가족 때문에 잠을 못 잤다", "몸살 감기로 몸이 아팠다"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지혜는 지민이 피곤하거나 아픈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지혜는 문제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해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 상사가 지혜를 불러 "동료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고 질책했다. 지민이 먼저 상사에게 개인적 사정을 호소하며 지혜를 "냉담하고 무정하다"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상사는 지혜의 해명을 듣지 않은 채 공감 훈련을 받을 것을 권하며 지혜를 내보냈다.
■나르시시즘의 전형적 패턴: 사건 왜곡과 책임 전가
심리학자 에린 레오나드 박사는 위와 같은 행태를 나르시시스트, 즉 자기애적 성향을 지닌 사람의 전형적 특징으로 설명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사건을 왜곡해 책임을 피하고, 자신은 무고한 피해자, 상대는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뒤에서는 거짓된 서사를 퍼뜨려 진짜 피해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몰아간다.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NPD)로 불리는 나르시시즘 성향은 과도한 자기중요감, 끊임없는 칭찬 요구, 특권 의식, 공감 능력 결여로 나타난다. 특별한 성취가 없어도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으며, 권위와 지위를 이용해 타인을 조종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종종 사이코패시·마키아벨리즘과 함께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로 분류되며, 냉혹한 조작·이기심·무자비함을 보인다.
■피해자에게 남는 상처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으면 억울한 낙인과 평판 훼손을 경험하기 쉽다. 사건을 사실대로 설명해도 "네가 문제다"라는 프레임이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왜곡당한 피해자는 "내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자기 의심에 시달린다. 결국 평판과 인간관계까지 흔들리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직장, 가족, 사회적 관계에서 타인을 소진시키고 무력화한다.
■대처 방안: 거리 두기·경계 유지·질투 인식
레오나드 박사는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할 때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1. 거리 두기 – 장기적인 프로젝트나 깊은 관계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경계 유지 – 무리한 부탁이나 호의를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의 부탁을 들어주는 행위는 향후 왜곡될 "재료"가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기록을 남겨 향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3. 질투 인식 – 나르시시스트들은 타인의 관계 능력, 성실성, 정서적 지능을 질투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들은 질투를 건설적으로 다루지 않고 상대를 무너뜨리려 한다. 도발에 흔들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무고한 피해자, 상대방을 가해자로 믿는 왜곡된 인지를 보인다. 나르시시스트의 왜곡된 인지는 주변 사람들까지 혼란에 빠뜨리며, 때로는 피해자가 스스로 정신적 균형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변에 나르시시스트가 있다면,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
▶원문 기사
"How a Narcissist Weaponizes the Narrative", Erin Leonard, Ph.D., 2025. 08.20. How a Narcissist Weaponizes the Narrative | Psychology Today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Cleveland Clinic.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Symptoms & Treatment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