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 캠프는 이날 공식 트위터에 “‘나도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그럴려면 가해자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언제든 묘역을 찾겠다’ 문재인 후보의 진심어린 얘깁니다..!”라고 문 후보의 뜻을 전했다.
여기서 ‘가해자측’이라는 건 최근 ‘5ㆍ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역사인식 논란에 휩싸인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짐작 가능하다. 박 후보는 ‘대국민통합’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물론 문재인 후보에게도 박정희 정권 시절 역사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문 후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공개했다. 경희대 법대 3학년 당시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효됐고 민청학련사건, 인혁당 사건 등이 터졌다. 학생운동이 없던 경희대에서도 유신 반대 시위가 계획됐는데, 그때 문재인이 시위에 필요한 선언문을 작성하고 시위를 주도했다.
석방이 되자 곧바로 문재인에게는 입영 영장이 날아왔다. 신체검사 날짜와 입영 날짜가 하루 간격이었다. 소위 강제징집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특전사였다.
제대 후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중인 그해 10월 무마(부산ㆍ마산)항쟁이 터지고 급기야 10.26(박정희 시해)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서울의 봄’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던 문재인은 엄청난 시위와 구속을 거쳐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사법시험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얻었지만 문재인은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이후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는데 이때 ‘운명’처럼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 캠프와 김경수 공보특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문재인 후보가 리트윗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