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전여송 기자]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이하 유통원)이 중소기업에 사전 통지한 위반 사유를 변경해 직접생산확인을 취소했다가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이달 유통원 국정감사에서는 직접생산확인 취소처분을 받은 기업들의 집행정지 신청에 의견서를 제출하거나 즉시항고한 사례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재 처분의 사실관계 확인부터 사후 소송 대응까지 유통원의 업무 관리체계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 사전통지는 '완제품 하청', 실제 처분은 '설계 외주'
30일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교통안전시설물 제조업체 A사는 2022년 7월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인 바닥형 보행신호등의 직접생산확인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서울지방조달청과 계약을 맺고 고양시 초등학교 등 9곳에 관급자재로 이 제품을 납품했다.
유통원은 2024년 1월 A사에 처분사전통지서를 보냈다. 타사 완제품을 사서 납품했다는 하청생산이 위반 사유였고, 2월 청문에서도 같은 사유를 문제 삼았다. A사는 부품만 구매했고 필수 공정은 직접 수행했다고 소명했다.
그러나 유통원은 2024년 3월 A사가 보유한 모든 제품의 직접생산확인을 취소하면서 사유를 바꿨다. 외주업체가 설계한 물품을 납품해 필수 공정인 설계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유가 바뀐 뒤에는 별도의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 법원 "기본적 사실관계 달라"… 설계 외주 판단도 인정 안 해
A사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을 뒤집었다. 보도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는 타사 완제품을 구매한 사실과 외주업체에 설계를 맡긴 사실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지 않다고 봤다. 바뀐 처분 사유에 대해 A사에 방어 기회를 주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설계 외주라는 판단 자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사 기업부설연구소는 2021년 9월 바닥형 보행신호등의 상하부 하우징과 인쇄회로기판(PCB) 등 전체 구성품 규격을 담은 최초 설계도면을 이미 작성해 보유하고 있었다. 유통원이 근거로 든 외주 계약은 2022년 1월에 맺은 것으로, 음성안내 보조장치 일체형(AIO) 제어보드 등 별도 신제품 개발에 관한 계약이었다. 조달청 물품식별번호도 서로 달랐다. 재판부는 외주업체가 기존 도면의 구조나 규격을 바꾸지 않고 자재 모델명과 입체도 등을 보완한 것을 설계 공정 외주화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통원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지난 9월 확정됐다.
유통원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청문 과정에서 더 중요한 공정 문제를 지적하게 됐고, 두 사유가 위반 규정상 같은 호에 해당해 유사하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1심에서는 유통원 의견이 충분히 인정됐고 검증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해당 절차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도급 납품 등 직접생산 위반으로 적발되면 해당 품목뿐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전 품목의 직접생산확인이 취소된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셈이어서, 처분 사유를 특정하고 소명 기회를 보장하는 절차가 그만큼 중요하다.
◆ 취소기업 104곳 집행정지 기간 3949억 납품… 대응은 ‘0건'
처분 이후의 쟁송 대응도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통원과 조달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직접생산확인이 취소된 기업 332곳 가운데 104곳(31.3%)이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이들 기업은 집행정지 기간에 8988건, 3949억원어치를 공공기관에 납품했고, 44곳은 집행정지가 1년 넘게 유지됐다.
이 기간 유통원은 집행정지 신청에 의견서를 내거나 인용 결정에 즉시항고한 사례가 없었다. 중기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뒤 올해 6월 대응 방안을 마련했지만, 적극 대응 대상을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직접생산확인을 받은 경우로 한정했다. 이 유형은 전체 취소 332건 중 31건이다. 하도급 생산과 타사 완제품 납품 등 전체 취소의 83%를 차지하는 유형은 대상에서 빠졌다.
다만 본안 소송에서는 유통원의 처분이 대체로 유지됐다. 같은 기간 판결이 선고된 78건 중 유통원은 64건에서 승소해 승소율이 82.1%였다.
이태식 유통원 대표는 15일 국감에서, 법원이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 집행정지를 인용하고 본안에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어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적극적으로 하는 행정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응 범위가 좁다는 지적에는 제재가 가장 무거운 유형부터 대응하려 했다고 설명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
중기유통원, 직접생산확인 취소 사유 바꿨다가 패소…집행정지 대응도 도마
항소심서 절차·실체적 하자 인정, 판결 확정…유통원, 절차 보완 방침국감서 취소기업 집행정지 의견서·즉시항고 '0건' 지적…이태식 대표, 적극행정 부족 인정 기사입력:2026-10-30 1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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