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난동 박연차 회장…박준용 판사에 혼쭐

검찰 구형보다 훨씬 엄한 판결로 사회지도층에 경종 기사입력:2008-05-23 10:42:35
항공기 내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 1시간 가량 이륙을 지연시킨 태광실업 박연차(63) 회장에게 법원이 검찰의 구형량보다 더 엄격한 형량을 선고하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법원이 뿔났기 때문이다. 법원은 통상 검찰의 구형보다 낮거나 비슷하게 선고하는 게 일반적인데, 법원이 이번에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는 박 회장에 대해 법원이 왜 엄벌했는지 판결을 통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 기내에서 무슨 일 있었나

사건은 그야말로 황당하다. 대기업 회장인 박씨는 지난해 12월3일 오전 9시경 술에 취해 부산 김해국제공항 주기장에서 활주로로 운항중인 대한항공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좌석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창문덮개를 내린 채로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었다.

이에 항공기 승무원 김OO(여)씨가 “비행기 이륙 전 안전을 위해 창문덮개를 올리고 좌석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씨는 술에 취한 때문인지 승무원의 요구를 지시하는 말투와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오해했고, 이에 거친 언동을 보였다.

당시 승무원은 처음부터 이유 없는 적대감을 표시하며 폭언을 하는 박씨의 ‘위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승무원들은 비즈니스석의 경우 탑승자의 인적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 박씨가 대기업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폭언까지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승무원들은 박씨에게 정중한 태도로 사정하다시피 약 15분간에 걸쳐 6차례 이상이나 항공안전에 필요한 지시에 따라 줄 것을 간청했다. 회장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배려한 것.

그러나 승무원의 간청에도 박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승무원이 경고장을 제시하자, 박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즉시 경고장을 찢어 버렸다.

또한 기장이 수회 경고방송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창문에 손을 대기만 해봐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라고 폭언을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박씨의 무례함은 이 뿐만 아니다. 박씨는 “야이, 가스나 저리 가라”며 여러 차례 승무원의 얼굴을 손으로 때릴 듯이 위협하는 등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심지어 힐난과 항의하는 다른 탑승객들에게 박씨는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등 막무가내 행태를 일삼았다. 대기업 회장에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추태 그 자체였다.

급기야 항공기 기장 및 승무원들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사태를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소란스런 상황이 초래됐다.

이에 활주로에서 이륙대기 상태에 있던 비행기는 기장의 운항 불가 판단에 따라 결국 이륙을 포기하고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안하무인하는 박씨를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후 연료를 다시 급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느라 비행 예정시간 보다 1시간 가량 운항이 지연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그럼에도 박씨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신병을 인도 받으러 온 항공사 직원에게 오히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를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는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등의 뻔뻔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스로 귀빈대접을 받는 공항 내 의전실로 들어갔다.

◈ 항공사, 사건 무마 급급해

박씨의 비난받을 행태에 대한 항공사의 대처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항공사는 박씨에게 약 2시간 가량 차를 대접하면서 설득하기만 했을 뿐, 소란행위 및 운항지연사실 등에 관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의 조치도 없이 사건을 무마해 박씨를 그대로 귀가시켰다.

항공사는 박씨의 난동으로 인한 운항지연에 따른 다른 탑승객들의 피해보다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귀빈예우에만 열을 올린 꼴이 되고만 셈이다.

다음날 박씨의 추태가 여러 언론에 보도되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자, 이에 비로소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됐다.

그러자 박씨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이틀 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언론에 유감의 뜻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박씨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일에 대한 여러분의 따가운 눈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으며, 사회적인 책임 있는 기업인으로서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의 추태로 인해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승무원이나 탑승객들에게는 별다른 피해복구나 사죄 등을 하지 않았다.

◈ 상황 파악 못하는 검찰

박씨는 이렇게 항공기 안전운항을 저해하는 행위를 바로 잡으려는 승무원의 정당한 요구와 기장의 지시에 불응해 소란을 피우는 등 기내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검찰이 1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이에 대한 법원의 시각은 엄격했다. 당시 재판부는 항공기 내에서 소란을 피우고 출발을 1시간 가량 지연시킨 행위는 약식기소로 처리할 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 박씨를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법원이 이렇게 박씨를 정식재판에 넘기며 사실상 엄벌의지를 시사했음에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엄단하겠다던 검찰의 칼날은 어디 갔는지 지난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박씨에 대해 약식기소와 같은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다.

박준용 판사 뿔났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판단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부산지법 형사4단독 박준용 판사는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약식기소 됐다가 정식재판에 회부된 박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또한 당시 운항지연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승무원들 및 127명의 탑승객들에게 사죄하라는 의미에서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도 내렸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비행기 창문덮개를 올리고 좌석을 바로 세워달라는 지극히 통상적이고 정당한 승무원의 지시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폭언과 폭행을 가할 듯한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그 와중에 항의하는 다른 탑승객들에게도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등 지시불응 및 소란행위의 내용 및 정도가 심해 기장 및 승무원들로서는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박씨의 추태에 혀를 내둘렀다.

또한 박 판사는 이런 박씨의 무례한 추태로 인한 운항지연 등으로 인해 탑승객 127명과 승무원들, 항공사 및 공항관계자 등이 겪은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인 고통과 피해가 적지 않은 점도 꼬집으며 형량에 반영했다.

아울러 박 판사는 비록 박씨가 보도자료를 통해 유감을 뜻을 표시하기는 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한 직접적·실질적인 피해자들인 승무원 및 탑승객들에 대해 별다른 피해복구 또는 사죄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며 사죄의 시간을 가질 것을 명령했다.

박 판사는 특히 “피고인의 범행 내용과 결과 등을 종합할 때 검사가 구형한 벌금 1000만원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응보·예방·교화’라는 형벌의 목적 내지 기능의 측면에서도 합당하다고 하기 어렵고, 그 실효성 측면에서도 적정하지도 않다고 판단된다”며 징역형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 사회봉사로 반성하라

박 판사는 다만, 박씨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된 이유에 대해 먼저 “박씨가 당초 경찰에서는 혐의 내용의 대부분을 부인했으나 검찰조사 단계 및 법정에서는 범행을 모두 시인하고 충분히 반성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박씨가 이 사건을 성찰의 계기로 삼아 본분을 지키면서 매사에 성심을 다하는 자세로 임해 앞으로 다시는 사회일반의 관심과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을 것임을 굳게 다짐하는 점도 반영했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왕성한 기업활동뿐만 아니라 장학사업·사회복지사업, 베트남에서 기업가로서 일구어 낸 명성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 민간외교활동 등 다양한 공익활동을 통해 지역 및 국가 경제, 사회발전에 기여·공헌해 온 점을 참작했다.

박 판사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이 사건 죄질이나 범정이 중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굳이 실형을 선고해 복역토록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고, 다소 가혹하다고 여기지는 면도 없지 않으므로, 징역형에 대해 집행을 유예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사건 운항지연으로 당시 승무원들 및 127명의 탑승객들이 속절없이 허비한 시간들에 상응하는 정도인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린다”고 덧붙였다.

박준용 판사는 누구?

박준용 판사 한편 대기업 회장의 무례한 행태에 대해 따끔하게 일벌백계한 박준용 판사는 1965년 울산 출신으로 학성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 동부지원 판사, 울산지법 판사, 부산고법 판사 등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부산지법 형사4단독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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