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단순 공시 실수인가, 사기적 부정거래인가

수사기관의 엄벌 기조와 기업의 대응 전략 기사입력:2026-03-25 16:25:04
법무법인(유) 엘케이파트너스 남재현 대표변호사

법무법인(유) 엘케이파트너스 남재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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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전여송 기자] 최근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한 엄단 의지가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시장 교란 세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자본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지분 구조를 은폐하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신규 사업을 공시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대응은 정책적으로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흐름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조사국과 검찰 인지부서에서 사건을 직접 다뤄본 경험, 그리고 현재는 피의자 방어권 보장의 최전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종합해 보면 최근의 수사 기조에는 분명 점검이 필요한 지점도 존재한다. 실무진이 공시 과정에서 범한 착오나 경영 판단의 결과까지도 그 효과나 의도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곧바로 ‘투자자를 기망한 사기적 부정거래’로 평가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 공시 위반과 사기적 부정거래, 적용 법리의 간극

기업 공시는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투자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장치이다.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거나 제때 공시되지 않을 경우 시장 가격 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단순한 공시의무 위반과 사기적 부정거래는 그 법적 성격과 책임의 범위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공시의무 이행 자체의 문제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전제로 한다. 이 구별이 흐려질 경우 기업의 공시 관련 행위 전반이 과도하게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확장될 위험이 있다.

일반적인 공시의무 위반은 일정한 형벌이나 행정 제재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사기적 부정거래는 기본적으로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전제되며, 부당이득 규모에 따라서는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이다. 동일한 공시 누락 행위를 두고 수사기관이 어떤 법리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결과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에서, 양자의 구별은 단순한 법리 논쟁이 아니라 기업과 개인의 실질적인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 수사기관이 ‘사기적 부정거래’를 선택하는 구조

수사기관이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일정한 구조적 이유가 있다.

우선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의 경우 단순 행정 제재나 가벼운 처벌만으로는 여론과 규범적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다. 더 무거운 형사적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건을 구성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자본시장법 제178조가 규정하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라는 개념은 해석의 범위가 매우 넓다. 수사 실무에서는 다양한 사실관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망 행위로 구조화하는 것이 가능하며, 사건을 일관된 범죄 프레임으로 묶어내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괄적인 구조는 자칫 경계가 모호한 사안이나 과실에 상당하는 사안까지도 모두 중범죄의 잣대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최근 실무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 법원의 판단 기준 - 객관적 사실과 정보의 중요성

다행히 법원은 공시 관련 사안에서 단순한 형식적 위반 여부만으로 범죄 성립을 판단하지 않는다. 공시 당시의 객관적 사실과 해당 정보가 투자 판단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사업목적을 추가하고 이를 공시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대법원은 사후적으로 해당 사업이 실제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허위 공시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공시 당시 적법한 절차를 거친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는 이상, 이를 사기적 부정거래로 확장하여 처벌하는 데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유상증자 과정에서 일부 지분을 차명으로 인수하고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사안에서도, 법원은 제동을 걸었다. 해당 누락 비율이 전체 지분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투자자의 판단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라면, 이를 사기적 부정거래로 엮어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결국 법원 판단의 핵심 기준은 공시 내용의 객관적 진실성과 정보의 중요성에 있다. 외형적인 위반 사실만으로 기망의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사 단계의 강경한 법리 적용과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 대응의 핵심 - 프레임이 아니라 구조적 접근

자본시장 관련 사건에 직면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감정적인 대응이다.

수사기관은 통상 사기적 부정거래라는 무거운 프레임을 먼저 설정한 뒤, 개별 사실관계를 그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따라서 방어의 출발점은 수사기관이 짜놓은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분리하여 치밀하게 검토하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방어권 행사의 핵심이 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 공시 내용이 당시 기준으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

•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존재했는지 여부

• 해당 정보가 실제 시장 가격과 투자 판단에 미친 영향의 정도

• 이익 발생과 공시 행위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

이러한 요소들은 뭉뚱그려 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철저히 독립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모든 행위가 하나의 범죄 서사로 결합되는 순간, 사실관계는 완벽한 기망 구조로 탈바꿈하고 피의자의 방어 여지는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 초기 단계의 객관적 진단이 결과를 좌우한다

자본시장 사건은 단순한 형법 해석을 넘어 기업 회계와 복잡한 금융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도의 전문 영역이다. 단일한 법률적 관점만으로는 사건의 전체 그림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수많은 실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건의 향방과 수사의 뼈대는 초기 단계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이 시점을 놓치고 사안이 불리하게 구조화되면, 이후 재판 과정 내내 수세적인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틈없이 정교하게 짜인 수사기관의 논리라 하더라도, 팩트와 법리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개별 요소를 해체해 보면 사실관계와 법리 사이에 무리한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망하기 전에 이 간극을 정확히 식별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핵심은 사안의 외형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내부 구조를 냉철하게 파헤치는 것이다. 수사가 본격화되는 초기 단계에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정확한 대응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야말로 무거운 혐의를 벗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남재현 대표변호사(법무법인(유) 엘케이파트너스)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로서 회계감사 및 기업 인수합병 업무를 수행하였고, 금융감독원 조사국 등에서 주가조작과 증권 불공정거래 사건을 직접 조사하였다. 이후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금융규제와 기업 형사 방어를 담당한 뒤 검사로 임관하여 대전지방검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 및 경제범죄형사부 등에서 다수의 금융 특수 사건을 처리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금융규제와 증권불공정거래를 연구하고 있다.

전여송 로이슈(lawissue) 기자 arrive71@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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