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L 시장은 ‘선점 경쟁’...초기 레퍼런스가 주도권 가른다

기사입력:2026-08-21 09:00:00
[로이슈 진가영 기자] 전자가격표시기(ESL)가 단순한 전자 라벨을 넘어 재고 관리와 동적 가격 책정, 데이터 기반 매장 운영을 지원하는 스마트 리테일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 시장조사기관은 세계 ESL 시장이 2025년 약 22억달러 규모에서 향후 연평균 12%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조사기관들은 15~17%대의 성장률을 제시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역시 주요 성장 시장으로 거론된다.

ESL 시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초기 시장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다. 중국 ESL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해외 영업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사업 규모를 확대해 왔다. 국가 자본이 산업 육성에 직접 개입한 중국 반도체 산업과는 구조적으로 다르지만, 시장 확대 초기부터 공급 물량과 고객사를 확보해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는 살펴볼 대목이 있다.

ESL은 일반적인 소비재와 달리 한번 구축된 시스템이 장기간 사용되는 인프라 성격이 강하다. 매장에 설치되는 전자태그뿐 아니라 게이트웨이와 통신망, 관리 소프트웨어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정 공급사의 시스템을 대규모로 구축한 이후 다른 업체의 제품으로 전환하려면 추가적인 비용과 시스템 변경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초기 고객사 확보는 단순한 당장의 매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유통기업이 일부 매장에서 ESL을 도입한 뒤 적용 범위를 확대할 경우 기존 공급사가 후속 사업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대형 유통기업과의 공급 계약과 실제 운영 경험이 이후 다른 고객사를 확보하는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도 있다.

국내 기업들은 저전력 설계와 통신 안정성 등 ESL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해 왔다. 다만 글로벌 경쟁이 가격과 공급 규모, 고객사 확보 능력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기술 경쟁력만으로 시장 지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내 대형 유통망에서 확보한 운영 경험은 해외 사업 확대 과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실적이 된다. 대규모 매장에서 실제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데이터와 구축 경험은 해외 유통기업이 공급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술 안정성과 사업 수행 능력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내 ESL 도입이 늦어질 경우 국내 제조기업들이 충분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기회도 제한될 수 있다. 이 기간 해외 경쟁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공급 물량과 고객사를 확대하면 생산 규모와 구축 경험 측면에서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ESL 산업 지원 역시 공급과 수요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제조기업의 저전력·통신·배터리 등 핵심 기술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동시에 ESL을 실제 도입하는 유통기업의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방식이다.

유통기업의 ESL 설비투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투자 관련 세제 지원을 적용하고, 제조기업의 핵심 기술 개발에는 R&D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 등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공급기업의 기술 개발만 지원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실제 도입 시장을 함께 확대해야 국내에서 구축된 실적이 다시 해외 사업의 레퍼런스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SL 시장은 아직 성장 과정에 있지만 한번 확보한 고객사와 구축된 시스템이 장기간 사업 기반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다. 기술 경쟁력을 실제 설치 물량과 운영 경험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관건은 기술 개발과 시장 확보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줄이느냐다. 국내 기업이 확보한 기술을 실제 유통 현장에 적용하고, 여기서 축적한 레퍼런스를 다시 해외 수주로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려면 제조기업과 도입기업을 함께 고려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jky197@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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