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친밀관계폭력 또는 친밀한 파트너 간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입법·사법부의 관심과 대중의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태국 경찰을 대상으로 진행된 흥미로운 연구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태국 Chulalongkorn(출라롱콘) 대학교의 크루아히란(Kruahiran) 박사 연구팀은 국제 저널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에 ‘태국 경찰의 친밀관계폭력 및 피해자 비난에 대한 태도: 성차별과 여성의 성역할의 영향(Thai Police Officers’ Attitudes Toward Intimate Partner Violence and Victim Blaming: The Influence of Sexism and Female Gender Role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는 태국 경찰관의 성차별적 태도가 친밀관계폭력 수용 및 피해자 비난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는 태국 경찰관의 성차별적 태도가 친밀관계폭력 수용 및 피해자 비난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피해 여성의 외모와 성역할 표현(예: 단정한 복장 vs 노출 있는 복장)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편견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전통적 여성상을 벗어나는 피해자는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이는 성차별적 태도와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됩니다.

2011년 미국, 케이시 앤서니(Casey Anthony) 사건에서 그녀는 딸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외모가 배심원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판결 이유로 확인되지 않으며, 매력-관대 효과의 한계로 남아 있다. 미국 사법 체계의 맹목성 원칙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편견이 개입되었을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 사진출처=Amazon Prime Video 'Casey Anthony: Where the Truth Lies' 캡처
이미지 확대보기■‘여성에게 관대한 태도’도 성차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양면적 성차별 이론(ambivalent sexism theory)’을 이론적 틀로 활용했다. 이 이론은 성차별을 (1) ‘적대적 성차별(hostile sexism)’과 (2) ‘온정적 성차별(benevolent sexism)’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적대적 성차별은 여성의 권력 추구나 자율성을 위협적으로 간주하며,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난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반면, 온정적 성차별은 여성을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보는 비교적 우호적인 시각이지만, 여성의 순응성과 의존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역시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보다 가정을 잘 돌보는 세심함을 지니고 있다”, “진정한 남자는 여성의 사랑을 얻은 사람이다”와 같은 문장들이 온정적 성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다.
■태국 사회와 경찰이 바라보는 친밀한 관계 폭력은?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친밀관계폭력 발생률이 높은 국가다. 유엔 여성기구(UN Women)의 보고에 따르면, 태국은 전 세계 75개국 중 여성에 대한 신체적 폭력 발생률 36위, 성폭력 발생률 7위, 남편의 아내 폭력 정당화 인식 비율에서는 49개국 중 2위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사회는 친밀관계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일부 태국 남성은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대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일부 여성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하며 그러한 폭력을 수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경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많은 태국 경찰은 법적 절차를 엄격히 집행하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 ‘화해’를 중재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정폭력방지법조차도 화해와 가족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피해자가 법적 절차를 요구할 경우 다학제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경찰 스스로 적극적인 조치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
■실험 설계: 경찰관의 성차별 인식과 피해자의 성역할
연구진은 태국 현직 경찰관 139명(모두 남성, 평균 연령 35.75세)을 대상으로 ‘양면적 성차별 척도’를 통해 경찰관들을 적대적 성차별형, 온정적 성차별형, 양면적 성차별형, 비성차별형 등 네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후 각 참가자에게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의 ‘모의 사건 영상’을 무작위로 시청하게 하였다. 영상은 동일하되, 피해자의 성역할 표현이 다르게 설정되었다. 한 영상은 ‘전통적 성역할 피해자(단정한 복장, 부드러운 말투, 가사와 남편 돌봄에 충실한 여성)’를, 또 다른 영상은 ‘비전통적 성역할 피해자(노출 있는 복장, 직설적인 언행, 가정 내 역할 회피)’를 노출하였다. 영상 시청 후, 경찰관들은 해당 상황에 대한 친밀관계폭력 수용 태도 및 피해자 비난 정도에 대해 설문에 응답했다.
■성차별적 태도, 피해자 비난으로 이어져
분석 결과, 경찰관의 성차별 유형과 피해자의 성역할은 친밀관계폭력에 대한 수용과 피해자 비난 태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적대적 성차별 또는 양면적 성차별을 가진 경찰관일수록 친밀관계폭력을 용인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둘째, 피해자가 비전통적 성역할을 보일 경우, 경찰은 그 폭력을 더 쉽게 정당화하거나 피해자 책임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셋째, 흥미롭게도 온정적 성차별을 가진 경찰관은 비성차별 집단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피해자 비난 경향을 보였다. 이는 ‘약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온정적 시각이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성인지 교육과 제도 정비 필요
이번 연구는 경찰관의 성차별 인식이 친밀관계폭력 대응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은 피해자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기관인 만큼, 편견 없는 응대가 중요하다. 따라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정기적인 교육과정과,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표준화된 수사 절차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편견에 입각한 수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친밀관계폭력을 단순히 ‘부부싸움’이나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을 고려한 피해자 중심 접근법(victim-sensitive investigation)이 수사 및 대응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 연구논문
Kruahiran, P., Boonyasiriwat, W., & Maneesri, K. (2022). Thai police officers’ attitudes toward intimate partner violence and victim blaming: The influence of sexism and female gender roles.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37(9-10), NP7426 –NP7446.
▶ 여성 폭력 관련 신고 링크
- 여성긴급전화 1366: https://www.mogef.go.kr/cc/wcc/cc_wcc_f001.do
- 여성 폭력 사이버상담: https://women1366.kr/?menuno=222
- 한국성폭력상담소: https://www.sisters.or.kr/
-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상담 관련 여성·가족·청소년·권익시설(여성가족부 운영): https://www.mogef.go.kr/inc/fs_fsc_s003.do?mid=fsc300
- 다누리 콜센터 (13개 언어 지원): https://www.liveinkorea.kr/portal/main/intro.do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