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사진제공=대법원)
이미지 확대보기2차로에는 피해자(67) 운전의 그랜저 승용차가 진행하고 있어 안전하게 차선을 변경해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를 게을리 한 채 그대로 2차로에 진입을 시도한 과실로 피해자의 승용차 좌측 뒤 펜더 부분을 피고인 덤프트럭 우측 앞바퀴 부분으로 충격했다.
그 충격으로 인하여 큰 소리가 났고 피해 차량이 심하게 흔들려 피해자는 우측 3차로와 갓길 사이에 피해 차량을 정차시켰다. 이때 피고인은 피해 차량을 지나쳐 1차로에서 2차로로 차로를 변경하면서 그대로 지나갔다.
결국 피고인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 및 그의 차량에 동승한 다른 피해자(61·여)에게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각각 입게 함과 동시에 뒤 범퍼 교환 등 수리비가 381만 원 상당이 들도록 승용차를 손괴하고도 곧 정차해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2018고정117)인 춘천지법 강릉지원 이여진 판사는 2018년 10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벌금을 납입하지 않을경우 10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된다.
1심은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과 그로 인하여 피해 차량의 탑승자들이 상해를 입거나, 피해 차량이 손괴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해자들이 사고 다음날 정형외과에 방문해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은 사실 등 피고인은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규정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자 피고인은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으로 항소했다.
피고인은 "화물이 가득 적재돼 있어 돌끼리 부딪히는 소리 이외의 충격음을 듣지 못했고, 더욱이 사고 당시 조수석 차축이 무너지면서 차가 오른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다른 차량을 충격하는 느낌도 받지 못해 사고가 난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피해자들의 상태 등에 비추어 피해자들이 구호조치가 필요한 정도의 상해를 입었다고 볼 수는 없고, 이 사건 사고로 인해 비산물 등이 발생한 바도 없으므로 교통상의 장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교통사고를 내고도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구호하지 않고 도주(도주치상)한 점은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피해차량을 들이받아 범퍼 교환 등 수리비가 들도록 피해자의 승용차를 손괴하고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사고후 미조치)한 점은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차량을 손괴하고도 즉시 정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증명이 부족함에도, 1심은 범죄사실을 상상적 경합범(하나의 행위가 여러개의 죄에 해당)으로 보아 하나의 형을 선고해 1심판결을 전부 파기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사고 당시에 상당한 충격음이 발생한 사실과 피해차량이 수 초 동안 떨리면서 오른쪽으로 밀린 사실이 확인된다.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에 의하더라도 트럭 내의 소음은 76.7dB로 지하철의 차내 소음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므로, 피고인이 위 소음이나 충격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의 물적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 경우 운전자가 취하여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말한다(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7도9828 판결 등 참조).
재판부는 "피고인은 교통사고를 내고도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구호하지 않고 도주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피고인과 합의했다. 피해자들이 입은 상해가 가벼운 편이다. 피고인은 약 20년 전 도로법위반으로 인하여 한 차례의 벌금형을 받은 외에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 이 외에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조건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피고인 및 검사는 쌍방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대법관 이기택)는 2020년 2월 6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인 춘천지법 강릉지원 합의부에 환송했다(대법원 2020.2.6.선고2019도3225판결).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에게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판결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 점을 지적하는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유지한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칙을 위배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수긍했다.
원심판결 중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은 파기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나머지 부분과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