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법정에서 법복(法服)을 입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법복 착용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먼저 법복은 판사를 권위주의적인 독선으로 이끌어 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법복은 판사들에게 법의 권위에 기대어 독선이나 안이한 판단에 빠지게 할 위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직 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30세의 젊은 판사인 서울중앙지법 노재호(사시 43회) 판사는 최근 법원소식지에 기고한 <법복을 입는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판사가 법복을 입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해 눈길을 끌고 있다.
노 판사는 먼저 “어느 날 어떤 신문의 독자의견 란에서 ‘시대에 어색한 법정 권위주의’라는 제목으로 재판부가 입·퇴정할 때마다 방청인들을 일어서도록 하는 법원의 관행에 대해 비판하는 취지의 글을 보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인터넷에는 다양한 댓글이 올라왔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하나가 있었는데 ‘판사의 나이를 보고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극기를 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 한낱 헝겁데기에다 절하는 것이 아니잖아요?’라는 내용이었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노 판사는 “법정에서 당사자나 방청인들이 재판부를 향해 예의를 갖추는 것은 법관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에 대해 존중을 표하는 것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법복 착용의 폐지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며 미국의 유명한 법철학자이자 연방항소법원 판사였던 Jerome New Frank의 말을 소개했다.
그는 “법관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재판을 하고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면 굳이 재판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로 법복을 입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법복은 법관을 권위주의적인 독선으로 이끌어 갈 위험이 있으며, 사법의 민주화나 자유롭고 부드러운 법정 분위기 조성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 판사는 “법관도 인간인 이상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데다가 재판의 속성상 패소한 당사자는 법원의 재판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재판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법복 착용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인간에게 있어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법대에서 법관이 법복을 입지 않고 꽃무늬 반팔티를 입고 재판을 한다든가, 머리를 깎은 스님이 가사(袈娑)가 아닌 물방울 티셔츠를 입고 법문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며 설득을 이끌어 갔다.
이어 “파스칼도 법관의 재판에 대한 존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중한 의복’이 필요하다고 한 바 있다”며 “솔직히 법관이 내린 결론에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 승복하는 이유는 판결문이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법복을 입은 법관이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니 그 결론이 공정하고 타당할 것이라고 믿어주기 때문”이라고 법복 착용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노 판사는 “또한 법복을 입는 순간 법관은 개성을 갖는 구체적 인격자에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추상적 인격자로 변모한다”며 “이때부터 법관은 개인으로서 말하지 않고, 법관의 인격을 통해 법이 말을 하는 것이 되고, 그래서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은 자신의 개인적인 주관과 가치관이 아닌 ‘법에 충실한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런데 법관도 사람인 이상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없을 리 없고, 구체적인 사건에서 그러한 개인의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깊은 번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노 판사는 “하지만 법관은 법복을 입고 있는 한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양심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쫓아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할 사명을 안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예컨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경우에도, 법정형으로 사형이 규정돼 있고 양형조건상 사형에 처함이 마땅한 사건의 경우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이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의 사명”이라며 “그래서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법관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고 법복의 의미를 강조했다.
노 판사는 “그러나 법복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복은 법관들로 하여금 법의 권위에 기대어 독선이나 안이한 판단에 빠지게 할 위험을 제공할 수도 있고, 법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오늘날, 법복이 때로는 법관과 당사자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고 폐지론자들의 우려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판사는 “그러므로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들은 이러한 점을 항시 경계하고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법복은 인간으로서 법관이 갖는 어쩔 수 없는 결점을 가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법관의 모든 잘못을 가려주는 ‘특권의 망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판사들의 자세를 역설했다.
끝으로 그는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서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권위는 그 법대 아래에 내려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 당사자의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한 어느 대법관의 퇴임사를 되새기며 말을 맺었다.
“법복은 법관 잘못 가려주는 ‘망토’ 될 수 없다”
노재호 판사, 판사가 법정서 법복을 입어야 하는 당위성 강조 기사입력:2008-09-25 19: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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