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진가영 기자] 미국 계약서를 처음 접하는 한국 기업이나 사업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점은 대개 계약서가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기업 간 계약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접하는 계약서보다 훨씬 세부적인 사항까지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서의 본질까지 복잡한 것은 아니다. 결국 핵심은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떤 책임을 어느 범위까지 부담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분쟁이 발생할 경우를 예상하고, 책임의 범위와 예외 등 주요 조항을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계약 검토와 협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한국 기업과 사업자가 놓치기 쉬운 기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내용과 최종 계약서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법률 상담 현장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미국 거래처와 장기간 협의하면서 가격이나 업무 범위, 독점권, 비용 부담 등 주요 조건에 대해 이메일로 합의를 주고받았더라도, 최종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누락된 채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의뢰인은 “계약서에는 없지만 분명히 합의했고 이메일도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상대방의 동의가 이메일 등에 상당히 명확하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의 계약 실무에 익숙하다면 이러한 자료가 있으니 계약 내용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 법원도 계약서의 문언만을 기계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며, 계약 체결의 경위와 당사자의 의사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계약의 내용을 해석한다.
그러나 미국 계약에서는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미국의 기업 간 계약서에는 흔히 ‘Entire Agreement Clause’, 즉 완전합의조항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최종 계약서가 해당 거래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완전한 합의를 담고 있고, 그 이전의 협의나 합의, 진술 등을 대체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이 미국 계약법상의 ‘Parol Evidence Rule’이다. 당사자들이 최종적인 서면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 체결 전 또는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구두 약속이나 서면 합의를 근거로 최종 계약의 내용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데 제한이 따를 수 있다. ‘Parol’이라는 표현과 달리 계약 체결 전에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다른 서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완전합의조항이 있다고 해서 계약서 밖의 자료가 언제나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계약 내용과 적용되는 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에 관해 상대방의 동의를 이메일로 받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실무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명확하다. 중요한 사항에 합의했다면 그 내용을 최종 계약서에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특히 계약서 초안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면 업무 범위나 독점권 등 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주요 사항이 최종 계약서에 빠짐없이 반영됐는지 다시 대조할 필요가 있다.
애스턴 법률사무소 이재훈 대표 변호사는 “계약 당시에는 서로 같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담당자가 바뀌거나 회사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거래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며 “따라서 계약을 검토할 때는 현재의 거래조건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상대방과 의견이 달라졌을 때에도 자신의 권리를 계약서에 근거해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미국 계약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합의했는가’가 아니다”며 “합의한 내용이 최종 계약서에 제대로 반영돼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비로소 계약 협상이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jky1977@lawissue.co.kr
미국 계약서, 왜 합의한 내용도 다시 확인해야 할까
기사입력:2026-09-17 10: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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