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rafficking Victims Protection Act, 2000)'은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를 강압, 사기, 협박 등을 통해 상업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현실에서는 피해자가 보호받기보다 오히려 범죄자로 처벌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대중이 떠올리는 인신매매 이미지 역시 현실과 거리가 있다. 흔히 납치나 국제 조직범죄를 연상하지만, 실제 인신매매는 가정, 학교, SNS, 연인 관계 등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발생한다.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활용해 인권 활동가를 지원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마인드브릿지(Mindbridge)의 아시아 이튼 박사(Asia Eaton, Ph.D., 플로리다국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마인드브릿지 사무총장)와 인권 활동가 안드레아 파월(Andrea Powell)은 <싸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기고문에서 심리학 연구를 통해 인신매매가 왜 발생하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인드브릿지(Mindbridge) 소속 아시아 이튼 박사와 안드레아 파월이 <싸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2026년 연구 기고문에 따르면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는 수요 구조, 아동기 트라우마, 온라인 확산 등 사회적 조건이 결합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피해자가 오히려 처벌받는 '제도적 배신'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수요 중심 정책 전환, 조기 교육 강화, 트라우마 기반 피해자 지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수요가 만든 범죄"... 성착취 시장의 구조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착취하지만, 착취의 배경에는 성착취를 소비하는 수요가 존재한다. 여성과 아동을 대상화하고 성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수요를 유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심리학의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 Bandura, 1977)에 따르면 특정 행동이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반복적으로 강화되면서 성착취를 허용하는 문화가 재생산된다.
지배적 남성성을 보며 성장한 남성 아동과 순응·침묵을 강요받으며 사회화된 여성 아동은 착취 구조에 참여하거나 착취에 취약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튼·파월은 피해자를 처벌하는 방식보다 성착취 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 "이미 상처 입은 아이들"... 취약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인신매매 조직은 무작위로 피해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이미 고립되었거나 학대를 경험한 아동·청소년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아동기 트라우마, 가정 해체, 보호 체계 실패 등은 착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안정적인 관계와 소속감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동은 애정과 관심을 가장한 접근에 쉽게 반응할 수 있다. 안전 욕구와 관계 유지 욕구 같은 심리적 취약성은 가해자의 '그루밍(grooming)', 즉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 점진적으로 착취 관계로 끌어들이는 전략에 특히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
■ 온라인으로 확장된 착취... "새로운 범죄 아닌 연장선"
성착취 범죄는 온라인 공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튼·파월은 온라인 성착취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아니라 기존 착취 구조가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술은 범죄 방식만 바꿨을 뿐 핵심 구조는 동일하다는 의미다.
가해자는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취약한 청소년을 찾고, 칭찬·관심 제공, 친밀감 형성, 점진적 요구, 협박 등 오프라인에서 사용되던 수법을 그대로 활용한다.
■ "피해자가 처벌받는다"...사법 시스템의 역설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입는 구조다.
현실에서는 피해 아동이 성매매, 무단결석,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해당 행위 상당수는 가해자의 강요나 통제 아래 이뤄진 것이다.
이튼·파월은 보호 시스템이 오히려 추가적인 피해를 유발하는 현상을 '제도적 배신(institutional betrayal)'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사례에서도 피해자가 오랜 기간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처벌받는 경우가 확인됐다.
■ 예방은 '조기 교육'에서 시작
이튼·파월은 예방의 핵심으로 조기 교육을 꼽는다.
아동기부터 신체 자기결정권, 안전한 관계, 온라인 위험에 대해 연령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고문에 따르면 조기 교육을 받은 아동은 피해 발생 시 더 빠르게 신고하고 자기 보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해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아동을 주요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 "보이는 모습이 전부 아니다"...징후를 읽는 법
인신매매 피해자는 영화 속 장면처럼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겉으로는 자유로운 상태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공포와 통제 속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불안한 행동, 과도한 경계심, 진술의 불일치, 나이 차가 큰 관계 등은 주요 위험 신호로 꼽힌다.
특히 의료·상담 현장에서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우울증, 불안, 성병, 외상 등의 문제로 의료·정신건강 기관을 자주 찾지만, 의료진의 교육 부족과 지원 인력의 한계로 피해자로 식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선별 도구와 트라우마 기반 임상 면담 기법이 개발돼 위험군 환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 "수요를 줄여야 한다"...정책 변화 필요
이튼·파월은 장기적인 해결을 위해 수요 구조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성 구매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비범죄화하는 '노르딕 모델(Nordic Model)'은 인신매매 감소에 효과가 있는 제도로 거론된다. 다만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방 정책, 생존자 복지 지원, 사회 구조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 "믿어주는 것부터 시작"... 피해자 지원의 핵심
이튼·파월은 피해자 지원의 출발점은 '믿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피해자는 이미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주변의 무관심과 불신 때문에 구조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말을 신뢰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회복의 첫 단계라는 설명이다.
■ 성매매·인신매매, "피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이튼·파월은 성매매 인신매매가 불가피한 범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불평등, 아동기 트라우마, 빈곤, 보호 체계 실패, 성착취 수요 구조 등 원인은 분명하며 모두 개선 가능한 사회적 조건이다.
심리학 연구가 제시하는 방향도 명확하다. 아동을 보호하고, 조기 교육을 강화하며, 피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성매매 인신매매 근절은 단순한 범죄 대응을 넘어 사회 구조 전반의 변화가 필요한 과제다.
▶ 원문 기사 출처
"The Psychology of Sex Trafficking?" Mindbridge Center, Asia Eaton, Ph.D., & Andrea Powell. 2026.03.30. .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