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군대에서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욕설과 질타 등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 병사는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2010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 후 휴학하고 현역병으로 입대해 2010년 6월 경기도 양주에 있는 모 부대에서 전차수리병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A이병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7월 10일 영내 창고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21세였다.
자살사고 뒤 조사결과 A이병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질책과 욕설, 암기강요 등을 받으면서 힘들어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A이병에게 욕설을 한 선임병 3명은 휴가제한을 받았다. 특히 A이병이 ‘웃는다’는 이유 등으로 욕설과 암기강요, 질책을 수차례 한 선병임 3명은 각 영창 15일 징계를 받는데 그쳤다.
한편, A이병은 부대 배치 후 실시한 간편인성검사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심리현상을 보이며 자포자기에 의한 우발행동이 우려되므로, 깊은 애정과 격려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세워주십시오”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소속 중대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자살한 A이병의 어머니가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했다. 하지만 서울남부보훈지청이 “부대의 소홀한 병력관리와 선임병들의 유형력 행사가 자살의 동기와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이나, 우울증에 빠져 삶을 포기하게 할 정도였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그동안 군 복무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순직군경’으로 예우를 받아야 마땅했지만, 죽음의 경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자살로 처리된 채 국가유공자법 제4조 6항의 예외사유 중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해 왔다.
대법원은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사망”이라며 사망 이전에 정신과 진단을 받은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사건만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왔다. 그러다 2011년 9월 국가유공자법 개정에 따라 예외사유 중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가 삭제됐다.
이후 대법원은 2012년 2월 전원합의체를 열고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데도, 그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판례(2010두27363)를 변경했다.
이번 A이병 자살사건 1심인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 문보경 판사는 2012년 10월 A씨의 어머니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요건 비해당결정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의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군 입대 후 선임병들의 암기강요, 욕설과 질책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 우울증 증세가 발현되고, 소속부대 간부 및 선임병들의 적절한 관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울증 증세가 악화돼 자살에 이르렀다고 추단된다”며 “망인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서울남부보훈지청이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4행정부(재판장 지대운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의 항소를 기각하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며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유지했다.
사건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지난 7월 24일 상고(2014두6487)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 없다”며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가운데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법이 규정한 특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 천주교인권위 “유가족이 국가와 법정싸움 감당하지 않도록 국가유공자 심의과정 정비해야”
한편 이번 소송의 원고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에서 대리했다.
과거 군의문사 사건은 2009년까지 운영된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의 조사에서 선임병의 가혹행위 등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군의문사위가 문을 닫은 이후 발생한 군의문사 사건은 공정한 조사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게 천주교인권위의 설명이다.
천주교인권위는 “군의 조사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유가족들은 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된 사실관계도 군 헌병대 조사 결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A이병의 유가족들은 고인이 확인된 사실 이상의 심각한 가혹행위를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민관 합동의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를 설치해 의문의 죽음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맡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이번 판결이 군 복무 중 자살이 개인의 나약함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정부는 비인간적인 군 복무 환경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군 복무 환경을 개선하고, 유가족들이 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사망 사건의 조사와 국가유공자 심의 과정을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선임병들 욕설과 질타 등 괴롭힘으로 자살 ‘국가유공자’
천주교인권위 “민관 합동의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 설치해 군의문사 조사해야” 기사입력:2014-08-08 21: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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