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편도욱 기자] 딜러 판매지침에는 CATL만 기재…파라시스 셀 탑재 전기차 약 3000대·판매액 2810억원
지침 배포부터 배터리 정보 공개까지 432일…은폐는 전임 경영진, 배상 수락 여부는 현 대표 몫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전기차 구매자 142명에게 각 4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받았다. 벤츠코리아는 EQE·EQS 5개 차종에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 셀을 넣었다. 그런데도 딜러사에 배포한 판매지침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CATL만 기재했다. 소비자분쟁조정 절차는 쉬린 에미라 대표가 취임한 다음 날인 2026년 7월 2일 시작됐다.
판매지침이 배포된 2023년 6월부터 파라시스 배터리 정보가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4년 8월까지는 432일이 걸렸다. 판매 당시 대표였던 마티아스 바이틀 전 대표 재임기에 배터리 정보 누락과 공정거래위원회 제재가 이어졌다. 쉬린 에미라 대표는 은폐 행위가 이뤄진 뒤 취임했지만, 소비자분쟁조정 결정 수락 여부와 미신청 피해자 보상계획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벤츠코리아는 2023년 6월 8일 'EQ Sales Playbook'을 내부 시스템에 올리고 제휴 딜러사에 배포했다. 지침에는 '벤츠가 CATL을 선택한 이유', '업계 최고의 기술력',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등 CATL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담겼다. 배터리 제조사를 묻는 소비자에게도 CATL의 장점을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안내했다.
실제 차량에는 파라시스 셀이 들어간 모델이 있었지만 판매지침에는 해당 제조사가 등장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가 독일 본사로부터 2021년 5월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교육자료를 전달받아 파라시스 탑재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딜러사들은 파라시스 셀 탑재 사실을 모른 채 CATL 배터리가 들어간 것으로 소비자에게 안내했고, 구매자들은 딜러의 설명을 믿고 차량을 구매했다. 소비자와 딜러 사이의 정보 격차를 만든 판매지침의 작성·배포 주체는 벤츠코리아였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도 판매지침 제작과 배포, 직원 교육을 통해 해당 내용을 영업에 적극 활용하게 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배터리 제조사는 차량 성능과 안전성에 직결되고 구매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는 판단이다. 소비자에게는 CATL을 설명하면서 실제 탑재된 파라시스 셀은 알리지 않은 판매 방식이 이번 배상 결정의 핵심 근거가 됐다.
파라시스는 2021년 3월 중국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이력이 있다. EQE가 국내에 출시되기 전의 일이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가 파라시스 셀 탑재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판매지침에서 이를 누락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출시된 EQE 6개 모델 중 4개, EQS 7개 모델 중 1개에 파라시스 셀이 들어갔다.
2024년 8월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벤츠 전기차에도 파라시스 셀이 탑재돼 있었다. 해당 화재와 배터리 제조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배터리 제조사 정보가 화재 이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벤츠코리아는 화재 발생 12일 뒤인 8월 13일에야 홈페이지에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다. 판매지침 배포일부터 공개일까지 432일이 걸렸다.
독일 본사도 우수 사례로 전파
공정위는 판매지침 제작·배포 과정에 독일 본사도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벤츠코리아는 판매지침의 주요 내용을 본사에 사전 보고했고, 배터리 관련 내용의 보완도 요청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독일 본사는 해당 지침을 우수 사례로 선정해 다른 국가에 소개·전파했으며, 벤츠코리아가 이를 내부 교육 플랫폼에 올려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가 파라시스 셀 탑재 사실을 알고도 이를 판매지침에서 누락·은폐한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위계에 의한 부당한 고객유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하고 두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벤츠코리아는 공정위 의결을 존중하지만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행정소송 등 법적 절차를 예고했다. 회사는 고객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입장도 밝혔다. 공정위의 제재와 검찰 고발에 이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구매자들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인정하면서 소비자 정보 제공을 둘러싼 판단이 추가됐다.
공정위가 집계한 파라시스 셀 탑재 차량은 약 3000대, 판매금액은 약 2810억원이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대당 평균 판매액은 약 9370만원이다. 이번 조정에서 결정된 1인당 400만원은 이 평균 판매액의 약 4.3%다. 142명에게 지급할 배상액을 모두 합치면 5억6800만원으로, 관련 판매금액의 약 0.2%다. 공정위 과징금 112억3900만원과 비교하면 약 5.1% 수준이다.
조정 신청자 142명은 공정위가 파악한 판매 대수 3000대의 약 4.7%에 해당한다. 이번 결정이 직접 대상으로 삼은 소비자는 전체 판매 규모에 비해 제한적이다. 미신청 피해자에게도 같은 보상이 이뤄지려면 벤츠코리아가 조정 결정을 수락하고, 위원회가 권고하는 보상계획 제출 절차에도 응해야 한다.
집단분쟁조정은 2026년 5월 11일 소비자 53명이 처음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위원회는 7월 2일 절차 개시를 의결했고, 7월 3일부터 8월 3일까지 추가 참가 신청을 받아 신청인은 89명 늘어난 142명이 됐다. 위원회는 9월 2일 최종 조정 결정을 내렸으며, 이를 11월 4일 공개했다.
판매지침 배포와 파라시스 셀 탑재 차량 판매가 이뤄진 기간은 2023년 6월부터 2024년 8월까지다. 당시 대표는 2023년 9월 취임한 마티아스 바이틀이었다. 바이틀 대표는 공정위가 2026년 3월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결정했을 때도 재임 중이었고, 공정위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그는 2026년 7월 독일 본사로 이동했다.
쉬린 에미라 대표는 2026년 7월 1일 벤츠코리아 대표이사 임기를 시작했다. 집단분쟁조정 절차는 취임 다음 날 개시됐고 최종 결정도 재임 중 내려졌다. 에미라 대표가 판매지침 작성이나 배터리 정보 누락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 현재 경영진이 결정해야 할 사안은 조정안 수락과 미신청 소비자에 대한 보상계획이다.
「소비자기본법」 제67조에 따르면 당사자는 조정 내용을 통지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수락 여부를 알려야 한다. 기간 안에 의사표시가 없으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하며, 조정이 성립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같은 법 제68조는 집단분쟁조정에서 사업자에게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소비자에 대한 보상계획서 제출을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사업자는 보상계획 권고를 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수락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11월 4일 공개된 조정 결정 관련 보도자료에는 벤츠코리아의 수락 여부나 미신청 피해자 보상계획에 대한 회신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의 회신 기간이 적용되는 만큼, 조정안 수락 여부가 후속 피해구제 범위를 가를 절차로 남았다.
한용호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은 "벤츠코리아가 분쟁해결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편도욱 로이슈 기자 toy1000@hanmail.net
"CATL 간판 걸고 파라시스 팔았다"…쉬린 에미라 호 벤츠코리아, 1인당 400만원 배상 결정
소비자분쟁조정위, 구매자 142명에 각 400만원 배상 결정…총 5억6800만원 기사입력:2026-11-04 20: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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