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선수금 11조 시대...'상조진흥법'은 4년째 표류

기사입력:2026-08-07 17:14:56
[로이슈 심준보 기자] 상조업계의 선수금 규모가 11조 원을 넘어서고 가입자가 1,1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국회에서는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할부거래법 개정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반면 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성장 기반을 뒷받침할 '상조진흥법' 제정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규제라는 채찍은 촘촘해지는데 진흥이라는 당근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상조서비스업은 최근 수년간 가입자 수와 선수금 규모 모두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반려동물 장례와 웰빙·헬스케어, 여행, 웨딩 등으로 서비스 영역이 확장되면서 제휴와 신사업이 주를 이루는 이른바 '상조 3.0'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이런 산업적 진화 속도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의 할부거래법 한 갈래뿐이라는 점이다. 등록제와 선수금 보전제도를 축으로 한 현행 체계는 소비자 피해 예방에는 기여했지만, 생애주기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산업의 실질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보험시장에서 별도의 보험업법이 자리 잡기까지 밟아온 과정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선수금의 사적 유용을 차단하기 위한 할부거래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선수금 운용 시 안정성·유동성·수익성을 확보하도록 원칙을 명문화하고,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의 경영건전성 기준을 마련해 기준에 미달하면 자본금 증액이나 위험자산 소유 제한 등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지배주주에 대한 신용공여 제한과 부당한 내부거래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상조업체를 사실상 '투자사'에 준하는 강도로 규율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5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상조업체가 선수금을 받은 뒤 폐업하거나 소비자피해보상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신속히 공개하도록 하는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소비자가 업체의 폐업·등록취소 사실을 더 빠르게 인지하고 피해보상 절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로, 7월 29일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상조진흥법은 2022년 기획재정부가 필요성을 검토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는 듯했다. 2023년 서비스산업 정책간담회에서 상조를 포함한 서비스산업 육성 방안이 논의됐고, 2024년에는 관련 연구용역까지 추진됐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 논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상조업 특화 회계지표 도입과 산업의 개념 정의, 육성 정책의 법적 근거 마련 등 핵심 의제는 여전히 세미나와 토론회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규제는 보험업 수준의 자산운용 원칙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보험업과 같은 업종 특화 회계·감독 체계는 갖추지 못한 불균형이 이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할부거래법 개정은 소비자에게 분명한 이점을 준다. 경영건전성 기준과 폐업 정보공개 강화는 선수금을 낸 소비자가 업체의 부실 징후를 더 빨리 파악하고 피해보상 절차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우려도 존재한다. 산업 특성을 반영한 회계·감독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규제 강도만 높아지면 자본 여력이 부족한 중소업체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시장이 소수 대형업체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 축소와 서비스 다양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형업체는 기존의 내부통제와 회계관리 체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규제에 대응할 여력이 있다. 반면 자본 기반이 약한 중소업체에는 자본금 증액과 특수관계인 거래 점검, 소비자 안내 체계 정비 등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규제 강화가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과 산업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어느 쪽이든 진흥법 없는 규제 일변도의 접근이 산업 재편의 방향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규제와 진흥이 하나의 축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와 산업 육성을 위한 진흥책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두 개의 바퀴인 만큼, 할부거래법 개정과 병행해 상조진흥법 제정 논의를 재점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조업 특성을 반영한 회계지표와 감독기준 마련도 과제로 꼽힌다. 보험업 수준의 자산운용 규율을 요구한다면 보험업에 준하는 업종 특화 감독 인프라도 함께 갖춰야 형평에 맞다는 지적이다.

산업의 법적 개념 정의를 명확히 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상조업이 더 이상 장례 상품에 국한되지 않고 교육·여행·웨딩·헬스케어를 아우르는 생애주기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는 현실을 법체계에 반영해야 향후 규제·진흥 정책의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중소업체에 대한 단계적 이행기간과 지원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영건전성 기준을 일괄 적용하기보다 규모별·단계별 이행 로드맵을 제시해 시장의 급격한 재편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1조 원 시장으로 성장한 상조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규제 못지않게 진흥의 축이 함께 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촘촘해지는 채찍과 수년째 논의만 반복되는 당근 사이에서, 상조업법 개정 논의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심준보 로이슈(lawissue) 기자 xzvc@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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