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살인 사건의 절반 이상은 피해자가 이별이나 관계 단절을 시도한 뒤 벌어졌고, 스토킹과 강압적 통제, 흉기 위협 등이 대표적인 전조 징후로 나타났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펴낸 '교제살인의 양상 분석 및 정책방향 설정' 보고서(저자 김성희 박사)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선고된 교제살인 관련 판결문 751건을 수집·검토했다. 김성희 박사는 검토 대상 가운데 '현재 연인'과 '전 연인' 관계라는 분석 기준에 부합하는 201건을 골라 교제살인의 특성과 위험요인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교제살인을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통제와 집착, 갈등이 쌓이다 터지는 '관계성 범죄'로 규정한다. 보고서를 토대로 교제살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 범행 전 나타나는 주요 위험 신호를 짚어본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김성희 박사 연구에 따르면, 교제살인 사건의 56.7%가 피해자의 결별·관계 단절 시도 이후 발생했고, 가해자의 91.2%는 남성으로 나타났다. 강압적 통제와 스토킹, 목 조름, 흉기 위협이 대표적 전조 신호였지만 범행 전 경찰이 개입한 사건은 14.9%에 그쳤다. 김성희 박사는 교제살인이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통제와 집착이 누적된 '관계성 범죄'라며, 관계 단계별 위험도에 맞춘 대응 체계와 조기 탐지 시스템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가해자 91%는 남성, 피해자 90%는 여성
분석 결과 교제살인 가해자는 압도적으로 남성이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2021년 10월) 이후 사건을 기준으로 가해자의 91.2%가 남성, 피해자의 90.3%가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50대 이상 중장년층 비율이 높았고, 피해자는 20대 여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사건에서 초범 비율은 57.0%로 집계됐다. 다만 재범 위험성 평가에서는 고위험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흔한 인식과 달리 범행 당시 술에 취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비음주 상태 범행이 58.8%였다. 정신질환 진단이나 치료 이력이 없는 경우도 법 시행 전 85.1%, 시행 후 76.3%로 대다수였다.
■ "헤어지자"가 부른 비극, 교제살인 56.7%는 결별 시도 뒤 발생
교제살인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는 관계 단절이었다. 전체 사건의 56.7%에서 피해자가 이별이나 관계 종료를 시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성희 박사는 교제살인이 순간적 격분으로 저지르는 이른바 '격정범죄(crime of passion)'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갈등과 통제 욕구가 폭발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가해자는 이별을 상대를 향한 통제력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잃어버린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수단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을 보였다.
■ 강압적 통제·스토킹·대인관계 차단, 범행 전 반복된 위험 신호
범행에 앞서 여러 위험 신호가 되풀이됐다. 판결문 분석 결과 강압적 통제가 확인된 사례가 절반을 넘었고, 대인관계 차단 49.3%, 강박적 집착 33.3%, 스토킹 34.3%로 뒤를 이었다.
강압적 통제는 주먹을 휘두르는 폭행과는 결이 다르다.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끊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일상을 옭아매는 식으로, 심리적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예속시키는 행동을 가리킨다.
김성희 박사는 강압적 통제야말로 교제살인을 예고하는 가장 또렷한 전조 신호라고 분석한다. 피해자가 관계를 끝내려는 순간 폭력 수위가 급격히 치솟는 경향도 확인됐다.
■ 목 조름·흉기 위협·살해 협박, 가장 위험한 경고 신호
행동으로 드러나는 위험요인도 뚜렷했다. 범행 이전에 신체폭력이 확인된 사례가 31.3%, 흉기 위협 20.0%, 구체적인 살해 협박 23.4%였다. 목을 졸랐지만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은 이른바 '비치명적 목 조름(Non-fatal Strangulation)'도 7.0%에서 나타났다.
김성희 박사는 여러 행동 가운데 목 조름을 가장 위험한 전조로 꼽는다. 목을 조르는 행위는 치명적 폭력 의도를 드러내며 상대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좌우하려는 신호다. 해외 위험성 평가도구에서도 살인 위험을 예측하는 대표 지표로 쓰인다.
흉기를 몸에 지니거나 일부러 내보이는 행위, 구체적인 살해 협박 역시 치명적 폭력으로 번질 위험이 큰 행동으로 평가됐다. 김성희 박사는 목 조름과 흉기 위협, 살해 협박이 교제살인 위험을 가늠하는 결정적 지표인 만큼, 현장에서 고위험 사건을 가려내는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경찰 신고 15%뿐, 피해자 85%는 공적 보호 없이 노출
보고서가 또 하나 주목한 대목은 공적 개입의 공백이었다. 분석 결과 범행 이전에 경찰 신고나 공식 개입이 확인된 사례는 14.9%에 그쳤다. 교제살인 피해자의 약 85%가 공적 보호망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치명적 범죄에 노출됐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첫 신고 단계에서부터 강압적 통제(52.6%)와 대인관계 차단(50.9%) 여부를 1차 위험 지표로 살피고, 위험 수준에 맞춰 대응 강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금의 대응 체계가 신고 한 건 한 건을 따로 처리하는 데 머물러 있어, 관계 안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위험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도 지적한다. 보고서는 신고가 반복됐는지만 볼 게 아니라 관계 안에서 폭력이 어떻게 누적되고 위험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꾸준히 따라가는 '동태적 위험관리(Dynamic Risk Management)', 곧 위험을 한 시점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적하는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우발범죄가 아니다", 관계 단계 따라 갈리는 위험 구조
김성희 박사는 교제살인을 연인 간 다툼이나 우발적 범죄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석 결과 현재 연인 관계에서는 강압적 통제와 대인관계 차단이 두드러졌고, 전 연인 관계에서는 스토킹(39.5%)과 흉기 위협(22.8%) 같은 보복형 폭력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관계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위험의 얼굴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교제폭력과 교제살인의 위험 구조가 관계 단계마다 달라지는 만큼, 관계를 이어 가는 시기와 끊어 내는 시기를 나눠 맞춤형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목 조름과 흉기 위협, 구체적 살해 협박을 '치명적 위험 행동(Critical Risk Behaviors)'으로 묶어 집중 관리하고, 관계 단계별 위험도에 맞춘 대응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언한다. 반복 신고 사건의 누적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 그리고 민간과 공공이 손잡고 위험을 일찍 찾아내는 조기 탐지 시스템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짚는다.
교제살인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우발적 범죄가 아니다. 통제와 집착, 협박과 폭력이 되풀이되는 동안 위험 신호는 이미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비극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결국, 경고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고 치명적 범죄로 번지기 전에 얼마나 빠르게 끼어드느냐에 달려 있다.
▶연구 출처
출처: 김성희(2025). 교제살인의 양상 분석 및 정책방향 설정.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발간등록번호 11-1320082-100011-10.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