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민후 변호사, "서소문 붕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 진상규명"

기사입력:2026-06-02 10:12:34
법무법인 선 파트너 변호사 김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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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전용모 기자] 또다시 익숙한 장면이다. 지난 달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졌다. 3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세월호 침몰 12년, 이태원 참사 4년이 지났는데 한국사회는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유족의 통곡, 정치권의 일제 조문,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그리고 며칠 후면 잦아들 보도. 이제는 익숙해서 더 참담한 풍경이다.

이 사고를 한낱 산업재해로만 볼 수 있을까. 서소문 고가는 2019년 콘크리트 조각이 도로로 떨어진 이후, 2021년 바닥판 탈락, 2024년 보 콘크리트 탈락과 강선 파손까지, 7년에 걸쳐 위험 신호를 거듭 발신해 왔다.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이 내려졌고,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철거 공사를 진행해 왔다. 사고 당일 새벽에는 슬라브 절단 작업 중 2.9㎝의 단차가 확인돼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안전점검 진단을 하는 도중 상판이 무너졌다. 이상징후가 발견된 시점부터 붕괴까지 약 12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이 사고는 어느 하청 근로자 한 사람의 부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시설물 노후화에 대한 장기 관리, 철거 공법의 적정성 검토, 발주자인 서울시의 안전관리 책무, 시공·감리의 위험성 평가, 새벽 이상징후 발견 이후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행사 여부 등 다층의 실패가 겹쳐 있다. 진상규명은 그 층들을 하나하나 분해해 보는 작업이다.

필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그리고 대한변협 이태원 참사 특위에서 일하며 같은 명제와 거듭 마주했다. 사회적 안전사고의 진상규명에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첫째, 형사처벌 트랙만으로는 결코 사고의 전모를 밝힐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진영과 당파를 가리지 않는 중립성을 갖춰 진상규명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누구를 응징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바꿔야 할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있어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누군가는 책임을 묻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마이크를 잡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결말을 안다. 선거가 끝나면 카메라는 떠나고, 정작 변해야 할 시설물 안전관리 체계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다음 참사를 기다리게 된다는 결말이다. 세월호참사 후 10년 동안 불법과적, 고박불량, 정원초과가 개선됐다는 뉴스를 들어본 일이 없고, 이태원참사 후 이벤트성으로 광역버스 입석문제만 뉴스가 되었다 사라졌다.

진짜로 답해야 할 사람은 카메라 앞에 선 고관대작이 아니라, 보고서 뒷장의 결재 라인 어딘가에 숨어있는 누군가이다. D등급 판정 이후의 보수·철거 의사결정, 공정 진행률 압박과 비용 통제, 새벽 단차 발견 직후 작업중지 권한이 실질적으로 행사됐는지의 여부, 위험성 평가 보고서의 결재 흐름. 이런 질문들은 정치 구호로는 파헤칠 수 없다. 매번 그래왔듯, 정치적 소란이 클수록 책임의 핵에 있는 관료조직은 감시의 눈을 피해 자료를 정리하고 책임선을 다시 그릴 시간을 번다.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 1999년 씨랜드, 2014년 세월호, 2022년 이태원, 2024년 제주항공, 그리고 서소문. 참사 리스트는 자꾸 길어지는데 우리가 얻어낸 교훈의 길이는 짧다. 어린 시민, 일하던 노동자, 길을 가던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재해가 아닌 참사로 자꾸 목숨을 잃으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공동체의 명분은 잠식된다.

유가족과 국민이 원하는 것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정쟁의 소용돌이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했고, 누가 무엇을 하지 못했으며, 무엇을 하면 다음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에 관한, 사실과 증거에 기반한 답이다. 진상규명은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끈질긴 종류의 행정이고, 가장 정직한 종류의 책임이며, 무엇보다 살아남은 자들이 떠난 자에게 갚아야 할 최소한의 빚이다.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회는 또 실패한다. 이번에는 정말 멈춰 서야 한다.

-법무법인 선 파트너 변호사 김민후(세월호조사 및 사회적참사 특조위 참여변호사)

전용모 로이슈(lawissue) 기자 sisalaw@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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