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도 위협 못 막는다"... 교제폭력 신고가 반복되는 이유

[형사정책 연구브리핑] 교제폭력, 112 신고 분석 결과 재신고율 46.7%... 경찰 "법적 근거 없어 접근금지도 어렵다" 기사입력:2026-05-30 22:12:25
교제폭력과 이별 뒤 보복 범죄, 이른바 '교제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별도 입법 필요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2017년부터 교제폭력 신고 코드를 신설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해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막고 싶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토로가 나온다.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소속 전지혜·권혁용·여개명 연구진은 〈경찰학연구〉(25권 4호)에 발표한 논문 '교제폭력 경찰 대응체계의 한계와 입법화 방향'에서 전국 112 신고 데이터 1,129건과 현장 경찰관 초점집단면접(FGI)을 분석해 현 대응 체계의 한계를 짚었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이 단순 폭력이 아니라 반복성과 관계성을 지닌 데다 강력범죄로 번질 위험이 큰 특수 범죄라고 진단한다.

전지혜·권혁용·여개명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연구진(2025)의 연구에 따르면 2025년 2월 일주일간 접수된 교제폭력 112 신고 1,129건 가운데 46.7%가 재신고 이력을 가진 사건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이 반복성과 통제성을 지닌 관계성 범죄임에도 독립 법률이 없어 현장에서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가해자 격리 중심의 보호체계 확대와 반의사불벌죄 적용 배제 검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전지혜·권혁용·여개명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연구진(2025)의 연구에 따르면 2025년 2월 일주일간 접수된 교제폭력 112 신고 1,129건 가운데 46.7%가 재신고 이력을 가진 사건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이 반복성과 통제성을 지닌 관계성 범죄임에도 독립 법률이 없어 현장에서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가해자 격리 중심의 보호체계 확대와 반의사불벌죄 적용 배제 검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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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 절반이 반복... 교제폭력,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2월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전국에서 교제폭력 코드로 접수된 112 신고 1,129건을 분석한 결과, 재신고 이력이 있는 사건은 전체의 46.7%였다. 두 건 중 한 건꼴로 반복 신고된 셈이다.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2~3회는 물론, 10회 이상 반복 신고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이 일회성 충돌이 아니라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재발 위험이 높은 만큼 초기 단계부터 적극 개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교제폭력은 단순 폭행과 달리 관계가 유지되거나 다시 형성되는 특성이 있다. 헤어졌다가 만나고, 신고했다가 취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위험이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다.

■ "처벌 원치 않는다"... 피해자 의사가 수사 막는다

문제는 교제폭력 수사가 피해자 의사에 지나치게 기댄다는 점이다.

112 신고 분석 결과 현장 종결 사건은 전체의 74.4%였다. 종결 사유의 상당수는 피해자의 처벌 불원, 신고 철회, 추후 고소 의사 등이었다. 수사 단계에서도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현장 경찰관들은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나 연락 회피 같은 구조적 제약 속에서 반복 신고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 교제폭력, 독립 법률 없어... "가장 답답한 건 보호조치를 못 하는 것"

현장 경찰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문제는 보호조치 부재였다.

교제폭력은 독립 법률이 없어 형법과 스토킹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등을 부분 적용한다. 경찰은 사실혼 여부나 스토킹 행위를 폭넓게 해석해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를 적용하려 하지만, 실제 적용 가능한 사례는 제한적이다.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처벌법의 보호조치 명칭과 절차, 적용 기간이 서로 달라 현장에서 혼선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장 경찰관들은 "불륜 관계나 동거 연인처럼 위험도가 높아도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접근금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 보호 체계의 한계도 제기됐다. 한 경찰관은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는 아무 제약 없이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보호 부담을 떠넘기기보다 가해자 격리와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 "교제 관계가 어디까지인가"... 법적 공백도 혼란

입법 논의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교제 관계'의 범위다.

국회에는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안과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스토킹처벌법 개정안 등 여러 법안이 발의돼 있다. 다만 교제 관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놓고는 의견이 갈린다.

이른바 '썸' 단계까지 포함할지, 즉석 만남이나 온라인 관계도 교제 관계로 볼지, 한쪽만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어떻게 판단할지가 대표 쟁점이다.

다만 현장 경찰관들은 법적 정의 논쟁보다 피해자 보호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한 경찰관은 "일주일을 만났든 하루를 만났든 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폭력이 발생했다면 우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민원·현장부담·정서적 소진... 결국 경찰 몫

현장에서 즉각적인 위험성 판단이 어려운 경우, 경찰은 사후 모니터링으로 추가 피해 여부를 확인한다. 다만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도 피해자가 연락을 피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관리 공백이 생긴다.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연락하고 반복되는 감정 호소를 듣는 과정은 모니터링 담당 경찰관의 정서적 소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장 경찰관들은 적극적인 보호조치와 수사 과정에서 가·피해자 양측의 민원에 동시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교제폭력 별도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을 우회 적용하는 현실도 현장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혔다.

■ "교제폭력은 단순 연인 다툼이 아니다"

논문은 교제폭력을 연인 간 갈등이 아니라 반복성과 통제성을 지닌 채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관계성 범죄로 봐야 한다고 짚는다.

연구진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동성 연인이나 내연 관계 등을 포함한 교제 관계 정의를 구체화하고, 가해자 특성과 사건 위험도에 따라 맞춤형 보호조치를 적용할 수 있는 보호체계 확대를 제안한다.

전체 신고 가운데 상당수가 신고 단계(36.2%)와 수사 단계(14.4%)에서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로 종결되는 점을 고려하면, 반의사불벌죄 적용 배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적극적인 현장 대응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 형 감면 대상 직무에 교제폭력을 포함하고, 정당한 직무 수행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과도한 민원 부담과 법적 책임 문제를 덜어줄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교제폭력을 '연인 사이 문제'로만 보는 인식이 유지되는 한, 반복되는 위험 신호를 제때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는 관계의 형태보다 피해 위험성과 재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연구 출처
전지혜·권혁용·여개명(2025). 교제폭력 경찰 대응체계의 한계와 입법화 방향, 〈경찰학연구〉, 25(4), 115-142.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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