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폭력과 아동 대상 범죄의 양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 괴롭힘, 온라인 성착취 등 비대면 범죄가 급증하면서 아동 보호체계도 전환이 요구된다. 미국에서도 아동 대상 범죄가 물리적 공간에서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디지털 환경에 맞춘 보호 시스템 재설계”를 강조한다.
‘아동안전지킴이집’ 제도는 2008년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지역사회-경찰 협력 제도다. 통학로 주변 문구점·약국·편의점을 지정해 위험 아동을 임시 보호하고 즉시 112 및 관할 지구대에 인계한다. 낯선 사람이나 동물의 위협을 목격했을 때는 위치와 상황을 신속히 알리고, 길 잃은 아동은 경찰청 실종아동찾기(국번 없이 182)로 신고해 개방된 공간에서 보호한다.
그러나 도입 17년째인 지금,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형식만 남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운영 효과에 대한 후속 연구도 부족해 실효성 검증이 쉽지 않다. 장일식(경찰대) 박사는 ‘아동안전지킴이집 운영 실태 및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경찰학회보>)에서 학교 주변 설치만으로는 유괴 예방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연구 내용이다.
■ 17년의 역사, 그러나 점점 낮아지는 실효성
아동안전지킴이집은 최초 아동 유괴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자발적 참여 의지가 강한 업소(협력 치안 활동 경험, 아동보호 관심 등)를 지정한다.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선정되면 표지물을 부착하고, 상황별 대처요령을 숙지하며, 정기 점검에 참여해야 하며, 공적이 있으면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이 지급된다.
2023년 기준 전국 지킴이집은 1만 510곳으로, 2018년 대비 약 28% 감소했다. 운영 실적 역시 아동보호 149건(전년 대비 71% 감소), 범죄신고 42건(1.6%)에 그쳤다. 학교 주변이 대부분 교통안전구역(스쿨존)으로 지정되어 있고, 피해자·목격자의 직접 신고가 일반화되면서 이용은 더 줄 것이란 전망이다. 연간 10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성과 없는 예산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연구는 검찰 통계와 경찰청 지침·지시 사항을 분석하고, 현장 경찰관과 운영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운영 현황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 현장의 목소리: “운영자도, 아이도, 제도도 모른다”
첫 번째 문제점은 형식적인 운영이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운영자들은 매뉴얼 숙지가 어려움을 호소했고 실제 상황별 구체적 행동 요령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인력 교체가 잦아 안전 지식과 같은 ‘대비 능력’ 교육의 부족으로 위기 대응력이 떨어진다. “경찰에 신고는 하겠지만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많다. 편의점의 경우 인건비 상승과 경기침체로 단기 아르바이트가 늘며, 전원에 대한 범죄경력 조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지판의 시인성 부족, 아동과 학부모의 낮은 인지도 또한 지적됐다. 상가 밀집지나 아파트 상가 밀집 지역에서는 표지판이 다른 간판에 묻히고, 모든 편의점이 해당하는 것도 아니어서 혼선이 생긴다.
전반적인 홍보 부족으로 실질적 도움의 대상이 되는 어린이들조차 대부분 아동안전지킴이집 역할과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이 아동안전지킴이집이 무엇인지 모르고, 학부모도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아동안전지킴이집 운영자 역시 “단순히 ‘치안 협조자’ 정도로 인식돼 명예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관리 인력·예산 부족 역시 운영의 어려움에 일조하고 있다. 주무 부서인 여성청소년과에서도 점검과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무 인력이 한정돼 경찰서별 다수의 아동안전지킴이집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유지하는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는 정도다.
■ 행정의 부담은 민간에... ‘봉사’에 기대는 안전망
아동안전지킴이집은 무보수로 운영되는 민간협력 제도다. 별도의 제도적 지원이 부족해 참여 동기도 낮다. 경찰에서는 범인을 신고한 우수 업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포상금과 감사장을 수여하고 있지만, 지킴이집 업주들에게 돌아가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 예로, 광주 지역의 경우, 한 곳당 연간 약 10만 원 수준의 예산만 배정돼 교육·점검 비용에도 못 미친다. “좋은 취지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할 뿐, 이에 따르는 보상도 없다 보니 관심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는 운영자 반응이 대표적이다.
실제 전문 전담 조직 없이 운영되다 보니 지속적 관리가 어렵고, 예산 및 인력 부족으로 점검이 소홀해지고 형식화되고 있다. 아울러 실제 이용률과 범죄예방 효과에 대한 체계적 평가 부재도 문제다. 결국 정책 지속의 타당성 없이 생색내기용 행정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 수치로 평가되는 ‘안전’, 유괴 예방 효과는 ‘미검증’
아동안전지킴이집 수는 행정안전부의 지역안전지수(범죄 분야) 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실제 운영 성과’가 아닌 단순히 아동안전지킴이집 ‘개수’ 중심의 평가지표다. 지역 간 아동 인구 편차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전체 인구 1만 명당’ 수치로 반영돼 일선 경찰은 실효성과 무관하게 아동안전지킴이집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도입 취지였던 아동 유괴 예방 효과도 입증되지 않았다. 아동 유괴 발생은 통계 수치상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본 제도 시행 이후 아동 유괴범죄 발생 건수는 2009년 74건에서 2010년 104건으로 증가 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4년에는 197건으로 5년 만에 116건이 증가했다. 13세 미만 아동 유괴 건은 2018년 82건에서 2023년 204건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지속해서 증가 추세를 보였다. 단순히 학교 앞에 지킴이집 표지판을 세운다고 범죄가 줄지 않는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아동보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연구자는 제도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첫째, 대상자들의 인식 전환과 관심 제고를 위해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아동안전지킴이집 이용에 대한 홍보활동을 위해서 교육부와 협력해 전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정기 교육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아동안전지킴이집 우수 운영자에 대한 실질적인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 세종특별자치시 ‘착한 업소’ 모델을 참고해 ‘사회적 약자 배려 및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최근 지역에서 발생하는 범죄 동향과 수법을 SNS 등으로 상시 교육해 적극적인 치안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 단순한 ‘피신처’ 개념을 넘어 ‘이동형 보호망’, ‘통합형 지역 치안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경찰청이 운영 중인 ‘아동안전수호천사 제도’ —즉, 우편배달원, 야쿠르트 배달원, 태권도 사범 등 외근 인력을 ‘이동형 보호자’로 활용하는 모델—과 연계하는 것을 제안한다. 단순하게 물리적인 공간에서 수요자가 찾아오도록 하는 개념인 아동안전지킴이집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동이 잦은 직업군을 활용해 통합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 자치경찰제와 지역 맞춤형 치안으로의 전환
현행 지역안전지수의 범죄 분야 지표는 인구 1만 명당 5대 범죄 발생 건수, 집객시설 수, 주점업 수, 스트레스 인지율, 경찰사업 체 수, CCTV 대수, 아동안전지킴이집 수, 자율방범대 원수 등 총 8개이다. 그러나 지역별 치안 수요가 상이하고, 농촌 지역은 통학버스로 안전하게 등·하교를 하는 수단이 존재한다. 따라서 ‘지킴이 수’ 단독 평가는 한계가 크다.
지역안전지수 지표에서 아동안전지킴이집 수를 삭제하거나, 기준을 ‘전체 인구 1만 명당’에서 ‘아동 인구 1만 명당’으로 바꾸는 등 실질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현실 지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정 방식도 ‘선 지정-사후 활동’에서 ‘활동 실적-사후 지정’으로 바꾸고, 지역별 인센티브를 부여해 운영자의 참여 동기를 높여야 한다.
아울러 자치경찰위원회 중심의 이관으로 지역 맞춤형 재편이 필요하다. 대전의 ‘자율방범대원의 집’ (야간 대피처·여성안심 사업과 연계), 세종의 ‘태권 폴리 순찰대’ (오후 태권도 학원 이동 시 112 신고 또는 청소년 선도·교통 봉사 등)는 아동안전지킴이집의 실효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자치경찰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안 시책 발굴에 강점을 갖는다.
■ ‘표지판 치안’에서 ‘참여형 보호망’으로
연구는 아동안전지킴이집 제도가 물리적 기반 약화, 참여 주체의 동기 결여, 아동의 낮은 인지율, 기관 간 연계 부족 등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처방은 세 가지다. ① 아동안전수호천사 제도와의 통합, ② 자치경찰 중심의 운영 전환, ③ 시민참여형 보호 네트워크 구축이다.
디지털 시대의 아동안전은 특정 공간에 머물 수 없다. 스마트폰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일상인 오늘, 아동안전지킴이집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융합형 안전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진정한 아동 보호는 표지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능력 있는 보호자’가 될 때 완성된다.
▶연구논문
장일식(2025). 아동안전지킴이집 운영 실태 및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경찰학회보, 27(4), 455-483.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