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한 이주민 집단이 늘면서 안산 원곡동, 서울 대림동·가리봉동 등에서 외국인 밀집이 뚜렷해졌다. 수도권을 넘어 농어촌으로까지 확산된 외국인 거주는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중심 문화와 충돌을 낳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외국인 밀집지역은 문화적 다양성의 공간이자 사회적 긴장이 교차하는 현장이 된다. 특히 국제범죄조직이 ‘커뮤니티 연결망’을 범죄 발판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범죄조직은 국경을 넘나들며 마약·인신매매·위조문서·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저질러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특정 국가와 도시를 장기 거점으로 삼아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이민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국제조직범죄의 지역 정착이 보고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직 장기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부 외국인 밀집지역에서는 조직화의 초기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김다은 상지대 교수는 <한국경찰학회보>에 게재한 논문 ‘이민자 밀집지역 내 국제조직범죄의 확산과 대응전략’에서 한국의 외국인 커뮤니티가 잠재적 범죄 취약지로 변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국가 차원의 선제 대응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기사는 해외 주요 사례를 바탕으로 ‘지역 기반화(Localization)’를 통한 조직범죄의 정착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 “지역이 무너지면 범죄가 뿌리내린다”… 범죄학 이론의 시사점
이민자 밀집지역 내 조직범죄 확산은 범죄학의 사회해체이론, 상황행동이론, 기회구조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사회해체이론: 지역의 통제력이 약할수록 범죄가 자란다
사회해체이론(Social Disorganization Theory)은 ‘지역이 무너지면 범죄가 뿌리내린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경제적 빈곤, 인구 이동(이주 증가), 문화적 이질성, 가족·공동체 조직 취약과 같은 특성이 결합될 때 지역 통제력이 약화되고, 범죄가 침투할 틈이 생긴다. 이는 단순한 주거문제가 아니라 ‘사회 통제가 약해진 공간은 범죄가 기회를 찾는 곳’임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 이론이 ‘집합효능감(Collective Efficacy)’ 개념으로 확장되어, 같은 구조적 여건에서도 공동체 응집력에 따라 범죄율이 달라진다는 점이 강조된다.
2. 상황행동이론: 약한 통제와 개인의 성향이 만날 때
사회해체이론이 ‘어떤 지역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가’에 초점을 둔다면, 상황행동이론은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묻는다. 상황행동이론(Situational Action Theory, SAT)은 범죄 성향이 높은 개인이 통제가 약한 환경에 놓일 때 범죄가 실행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즉, 이민자 밀집지역의 조직범죄처럼 지역의 사회적 통제가 약해도 모든 주민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도덕적 허용 수준과 구체적 상황의 유혹·통제 메커니즘이 결정적이다. 따라서 단순한 단속보다 멘토링·도덕교육 등 예방 중심의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3. 기회구조이론: 합법의 부족, 불법의 풍요
기회구조이론(Opportunity Structure Theory)은 ‘범죄는 기회가 있을 때 발생한다’는 전제를 둔다. 범죄 기술을 배우거나 공범을 만날 기회가 없는 환경에서는 조직 범죄 참여가 어렵지만, 이미 범죄 네트워크가 형성된 지역에서는 청년층이 자연스럽게 유입되어 범죄 하위문화(subculture)가 형성된다. 이민자 밀집지역은 종종 합법적 기회는 부족하고, 불법적 기회가 풍부한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기회구조이론은 “범죄 동기”뿐만 아니라 “범죄 기회”에 주목함으로써, 사회해체이론이 간과하기 쉬운 경제적 요인과 합법 구조의 실패를 강조한다.
<h4 dir="auto">■ 국제조직범죄의 전략: “드러나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려라”이민자 커뮤니티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사회 다양성의 긍정적 요인을 지니지만, 동시에 제도적 취약성과 감시 공백으로 인해 범죄조직 침투의 최적지가 되기도 한다. 해외 사례는 조직범죄가 ‘지역 기반화’ 전략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 베네수엘라발 Tren de Aragua: 난민 이동을 따라 확산된 ‘이동형 거점화’
베네수엘라발 범죄조직 Tren de Aragua(TdA)는 난민 이동 흐름을 타고 해외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의 국제 확산은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 위기로 촉발된 대규모 이주와 보조를 맞춘다. 2018년 전후로 난민·이민자가 남미 전역으로 이동하자 TdA는 동족 이주 흐름을 따라붙는 방식으로 세력을 키웠다. 최근에는 미국으로까지 진출해 대도시의 이민자 쉼터·임시 거주지를 중심으로 강력범죄, 인신매매, 보이스피싱, 콜센터 운영 등 다각도의 범죄를 전개하고 있다.
불안정한 체류 신분, 언어 장벽, 사회적 고립 등 이민자의 구조적 취약성이 조직 운영의 기반이 됐다. 그들은 국경의 밀입국 루트, 빈곤 커뮤니티 등 감시가 느슨한 공간에서 동향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TdA는 지역사회 밖의 ‘침입자’가 아니라, 커뮤니티의 “비공식 수호자”로 위장해 내부 네트워크를 파고드는 방식으로 세력을 넓혔다. 이 사례는 초기 개입과 신속한 체류·노동·보호 서비스 제공이 조직 정착을 막는 핵심 변수임을 보여준다.
2. 이탈리아 ’Ndrangheta(은드랑게타): 혈연·지연 네트워크 & 합법·불법의 경계에서 지역 승인과 범죄 인프라 확보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기원한 마피아 조직 ’Ndrangheta(은드랑게타)는 가족·친족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로 확장했다. 이들의 해외 확장은 이탈리아인의 이민사와 맞물린다. 칼라브리아 출신 이민자가 정착한 북미·남미·유럽·오세아니아 곳곳에서 ‘연쇄 이주–가족 합류–해외 분파 형성’의 경로로 뿌리를 내렸다.
식료품·무역·레스토랑 등 합법 사업으로 지역 신뢰를 얻는 동시에, 음지에서는 마약·자금세탁을 병행하는 ‘이중 생활’ 전략으로 현지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이들은 언어·관습을 공유하는 동포 커뮤니티의 문화적 결속력을 방패 삼아 외부 감시를 피하고, 글로벌 금융망에 침투해 자금세탁과 범죄 공급망을 이어가고 있다.
3. 프랑스 마르세유: 이민자의 빈곤이 마약 인력 공급망으로
지중해 관문 도시 마르세유는 프랑스 최악의 마약 범죄지역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아르메니아, 북·서아프리카, 코모로 등 다층적 이민 역사를 가졌지만, 북아프리카계 후손이 밀집한 북부 공영주택 단지의 청년 실업률은 70%, 교육·복지 인프라는 열악하다.
마약조직은 이 절망적 환경을 ‘인력 공급망’으로 전환했다. 돈이 필요한 10대들이 운반·판매에 동원되고, 총격·방화가 일상화된 지역에서는 범죄조직이 사실상 치안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다.
4. 영국 버밍엄: 다문화 대도시의 ‘제도 허점’을 이용한 로컬 착취형 범죄
영국 버밍엄은 런던 다음으로 이민자가 많은 도시다. 남아시아계와 아프리카·동유럽 출신이 뒤섞인 이곳에서 일부 조직은 복지·주거제도의 허점을 이용했다.
시의 감독 공백을 이용해 저가 주택을 대량 매입해 출소자·난민·노숙인을 위한 ‘지원주택’으로 위장 등록해 보조금을 빼돌렸다. 실제로는 난민·노숙인을 강제로 조직 노동에 동원했다. 또한 빈집을 이용해 베트남 등지에서 온 불법이민자를 대마 재배 농장에 투입하는 등 이주민 착취형 범죄가 확산됐다. 버밍엄의 교통 요충지성은 이런 전국적 사업의 거점화를 도왔다.
■ 외국인 밀집지역이 국제범죄조직의 거점이 되는 과정의 공통점
커뮤니티 내부에서 시작되는 침투‘장소–네트워크–제도’ 삼각지점이 열리면, 조직범죄는 뿌리내린다.
Tren de Aragua는 난민 이동을, ’Ndrangheta는 친족망을, 마르세유·버밍엄은 빈곤과 제도 허점을 이용했다. 위 사례 모두 (1) 취약한 지역 환경(빈곤·이동성·문화 이질성이 높고, 집합효능감이 낮은 곳), (2) 폐쇄적 네트워크(동족·가족 기반의 폐쇄 네트워크), (3) 제도의 감시 공백(체류·복지·주거·노동 시스템 사각지대)이 맞물릴 때 조직범죄가 지역에 뿌리내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국제조직범죄의 새로운 얼굴, “커뮤니티 내부에서 시작되는 침투”다. <계속>
▶연구논문
김다은(2025). 이민자 밀집지역내 국제조직범죄의 확산과 대응 전략. 한국경찰학회보, 27(4), 485-518.
김지연(Jee Yearn Kim) Ph.D.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