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진가영 기자] 영화는 타인의 시선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하지만 카메라 밖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시선이 종사자의 인격과 자기결정권을 위협하기도 해왔다.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당하고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례가 그 일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3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현장 종사자의 절반 이상이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촬영·조명, 분장·의상 등 비정규직·하청 구조의 직군에서 피해 비율이 높았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90% 이상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단위 계약, 위계적 구조,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과거에는 ‘명백한 증거’와 피해자의 즉각적 반응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 2018년 판결(2017두74702)은 이러한 관행에 균열을 냈다. 제자에게 “뽀뽀를 해주면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발언과 불필요한 신체 접촉으로 해임된 교수가 문제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심의 무혐의 판단을 뒤집으며 성희롱 판단에 ‘성인지감수성’을 강조했다.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관계와 상황, 권력관계를 고려해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즉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권력관계 속에서 망설였을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9년 ‘레깅스 촬영 사건’(대법원 2019도16258) 역시 성인지감수성의 의미를 확장했다. 버스 안에서 여성 승객의 하반신을 촬영한 행위에 대해 항소심은 “평상복 차원”이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이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분노·공포·모욕감 등 다양한 감정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개된 장소라 해도 피해자 의사에 반한 촬영은 성적 대상화로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들의 의의는 ‘성적 수치심’ 개념을 전통적 범주에서 벗어나 피해자가 실제 경험하는 다층적 감정으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확인했고, 불법 촬영이나 성적 시선의 강요 같은 비신체적 행위에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음을 천명했다.
영화산업은 창작의 자유와 강한 위계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권위적 구조 속에서 성희롱과 괴롭힘이 묵인된다면 창작의 자유 또한 위협받는다. 성인지감수성은 현장의 목소리를 세심히 듣고, 피해자의 존엄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라면, 그 제작 현장 또한 존엄과 감정이 존중받는 공간이어야 한다. 성인지감수성은 영화산업의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잣대이자,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도움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센터장/공인노무사 박정연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news@lawissue.co.kr
영화 현장, 성인지감수성으로 다시 보다
기사입력:2025-10-23 11:10:00
<저작권자 © 로이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이슈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ㆍ반론ㆍ추후 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주요뉴스
핫포커스
투데이 이슈
투데이 판결 〉
베스트클릭 〉
주식시황 〉
항목 | 현재가 | 전일대비 |
---|---|---|
코스피 | 3,845.56 | ▼38.12 |
코스닥 | 872.03 | ▼7.12 |
코스피200 | 536.37 | ▼6.22 |
가상화폐 시세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65,545,000 | ▼468,000 |
비트코인캐시 | 725,000 | ▼2,500 |
이더리움 | 5,801,000 | ▼62,000 |
이더리움클래식 | 23,660 | ▼120 |
리플 | 3,602 | ▼15 |
퀀텀 | 2,965 | ▼8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65,541,000 | ▼553,000 |
이더리움 | 5,800,000 | ▼64,000 |
이더리움클래식 | 23,660 | ▼120 |
메탈 | 756 | ▼6 |
리스크 | 322 | ▼4 |
리플 | 3,603 | ▼17 |
에이다 | 969 | ▼6 |
스팀 | 136 | 0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65,600,000 | ▼480,000 |
비트코인캐시 | 725,000 | ▼3,000 |
이더리움 | 5,795,000 | ▼70,000 |
이더리움클래식 | 23,660 | ▼130 |
리플 | 3,605 | ▼14 |
퀀텀 | 2,969 | ▼2 |
이오타 | 216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