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은 손목에 케이블 타이를 찬 채 몇 시간 동안 버스에 갇혔고,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해 컵에 용변을 보거나 옷에 실례해야 했습니다. 도착지에서는 침구나 깨끗한 옷 없이 금속 침대 프레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장애 수감자는 휠체어 이동이 제한되고 의료 보조 기기 지원이 중단되면서 생존 위협을 겪기도 했습니다. COVID-19 확산 위험 속에서 비위생적 환경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바 있습니다(출처: Penal Reform International, 2021; NPR, 2020; OPB, 2020).
2025년 3월,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긴급 재해 대피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청송으로 번지며 경북북부 제2교도소의 500여 명 수감자가 긴급 이송된 바 있습니다. 최대 3,500명 이송이 검토됐으나, 실제로는 수갑을 찬 수감자들이 호송 버스로 이동하며 제한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처럼 긴박한 대피 상황에서 장애 수감자에 대한 대비는 얼마나 이뤄졌을까요?
교정시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재난은 단순한 대피 이상의 문제다. 특히 신체적·감각적·인지적 제약을 가진 장애인 수감자에게는 별도의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애 수감자 1,500명… 시설 내 비상대응 현실은?
2023년 기준, 국내 9개 교정시설(안양, 여주, 청주 등)에서 지체, 시각, 청각, 언어 장애를 가진 수감자들이 복역 중입니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치료감호소를 제외한 약 54개 구치소 및 교도소에서 약 1,500명의 장애 수감자가 수용돼 있습니다. 이는 전체 수감자의 약 2.8%에 해당합니다(출처: 비마이너).
이들은 공간 이용 제한, 의료 서비스 접근 어려움 등 일상적 제약 속에서 생활 중입니다. 재난 발생 시 이들은 생존과 직결된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장애 수감자가 겪는 교도소 환경 제약
교정시설은 보안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특수 환경입니다. 미국 교정 전문 잡지 <저스티스 트렌드(JUSTICE TRENDS)>에 따르면, 장애 수감자가 재난 상황에서 직면하는 주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접근 불가능한 대피 경로: 휠체어나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는 수감자는 경사로, 엘리베이터 부족으로 이동이 제한된다.
- 의사소통 단절: 청각·시각 장애인은 비상 방송이나 시각 표지를 인식하지 못해 정보에서 소외된다.
- 의료 서비스 중단: 재난 시 의료 보조 기기나 필수 의약품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본 기사에서는 미국 교정 분야 전문 매거진 <JUSTICE TRENDS>에서 제시한 내용을 토대로 재난 시 장애인 수감자들에 대한 비상 대응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을 소개합니다.

장애 수감자는 재난 시 이동, 의사소통, 의료 접근의 제약으로 취약한 현실이다. 이에 비상 재난 발생 시 접근 가능한 대피 경로, 특화된 대응 훈련, 장애 친화적 인프라 구축 등 포괄적인 지원과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교정시설, 장애 수감자를 위한 대응 방안은?
1. 위험 평가 및 사전 대비 계획 수립
전 세계적으로 형사사법 및 교정제도 개혁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 NGO단체 '페날 리폼 인터내셔널(Penal Reform International, 2021)'은 재난 대응을 위해 사전에 장애인의 위치, 상태, 필요를 파악한 비상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동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장애인 또는 건강상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수, 그들이 교도소 내 어디에 수감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등등 이와 같은 비상대응계획은 재난위험을 줄이기 위한 교정시설 내 핵심 요소다.
2. 교정직원 대상 교육 및 모의훈련
교정직원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데, 교육에는 반드시 실전과 유사한 시뮬레이션 훈련(모의 훈련)이 포함돼야 한다. 실제 상황을 상정한 비상 훈련을 통해 계단용 의자(stair chairs), 구조용 썰매(sleds) 등의 보조 대피 장비 사용법을 익혀야 하며, 장애 수감자와 명확하게 소통하는 훈련, 가능한 경우 수감자 본인과 돌봄 방식을 협의하는 절차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3. 장애 친화적 시설 인프라 구축
교육과 더불어, 교정시설의 물리적 환경 자체도 장애인의 필요를 고려해 개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인프라 요소가 필요하다.
-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대피 경로 설치
- 시설 내 대피 공간(refuge area) 마련
- 예비 배터리, 이동식 산소통 등 의료 보조 기기 비치
- 감각 자극을 최소화한 비상 공간 운영
외부 전문가와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국내의 경우, 보건복지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한국장애인개발원, 대한적십자사 등과 같은 기관에서 재난 대비 및 대응을 위한 정책 개발, 연구, 교육, 훈련 등을 통해 장애인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교정시설이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한 자원과 노하우를 보완할 수 있다.또한, 지역사회에서는 장애인 단체와 협력하여 재난 대응 훈련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연계를 통한 재난 대응 훈련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5. 장애인의 참여 보장
대피 및 대응 과정에 장애 수감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자율성 존중을 넘어, 개별적인 필요를 반영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된다. 대피 과정 전반에 걸친 지속적 의사소통은 질서 유지와 공황 방지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 사후 지원
마지막으로, 회복 단계는 평가와 개선의 기회다. 위기 상황 이후 재난으로 인해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장애 수감자의 신체적·심리적 회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후 검토(post-event review)를 통해 대비 및 대응 과정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다음 재난 전에 시스템을 보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기후 위기 시대… '장애 수용자 안전'은 더 이상 선택 아닌 의무
기후 변화로 인해 자연재해 빈도와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 교정시설은 모든 수감자의 안전, 특히 장애인에 대한 포괄적 대비를 필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장애 수감자는 단지 보호받아야 할 '소수'가 아니라, 재난 대응의 기준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포괄적 재난 대비는 단순히 도덕적·윤리적 책무를 넘어서, 공공 안전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직원 교육, 인프라 개선, 장애인 인권단체와의 협력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교정시설은 위기를 보다 잘 극복하고, 모든 수감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북 지역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 교정시설 내 장애 수감자의 피해와 대응 경험을 점검하고, 실질적인 개선책을 수립하기 위한 소통과 실천이 시급하다.
▶원문 기사
- "Supporting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during disasters: A critical need for inclusive preparedness in prisons", JUSTICE TRENDS, 25.3.19.
- "구치소·교도소 수용된 장애인들 인간다운 처우 못 받는다”, 비마이너, 21.7.6.
- "Natural hazards and prisons: Protecting human rights of people in prison in disaster prevention, response and recovery". (ISBN: 978-1-909521-88-9). Penal Reform International(2021).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