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희곡 『Gas Light』에서 비롯된 가스라이팅은 1944년 영화로 대중화 됐습니다. 영화 속 남편 잭(Jack)은 가스등을 교묘히 조작해 아내 벨라(Bella)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녀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려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이는 현실을 왜곡해 상대를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가스라이팅은 학문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에서는 2018년 한 배우의 논란으로 이 용어를 대중들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배우는 연인에게 다른 배우와의 접촉을 제한하거나 대본 수정을 지시하며 심리적 통제를 시도했다는 내용으로 이슈가 된 바 있습니다. 이후에는 언론을 통해 '가평 계곡 살인 사건' 등이 보도되며, 가스라이팅이 범죄로 악용되는 사례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전명희(한동대)·박정아(경남대)·이주대(한동대)가 뉴스 기사에 보도된 '가스라이팅 범죄' 사건들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연구진들은 가스라이팅은 심리 조종을 넘어 성범죄,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들 연구진이 2019~2023년 국내 기사 710건 분석 결과, 성범죄(50.9%)가 가장 많았으며, 직장·연인·가족 관계에서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희곡 『Gas Light』와 1944년 영화에서 비롯된 용어로, 타인의 현실을 왜곡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학대 행위다. 2019~2023년 710건 기사 분석 결과, 가스라이팅은 성범죄(50.9%)로 가장 많이 이어지며, 직장·연인·가족 관계에서 빈번하다./ 사진=1944년 스릴러 영화 『가스라이트』의 찰스 보이어와 잉그리드 버그먼, 사진출처=Britanica
이미지 확대보기■ 무엇을, 왜 연구했나?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혼란과 자기 의심을 유발하고, 현실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심리적 학대다. 기존 연구는 주로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보았으나, 이론이나 사례 중심에 머물렀다. 이에 본 연구는 국내 언론이 가스라이팅을 어떻게 다루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2019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국내 대표 일간지의 '가스라이팅' 관련 기사 869건을 대상으로 했다. 이 중 범죄 관련 기사 710건(118개 사건)을 추출해 텍스트 마이닝(기사 키워드와 패턴 추출 기술)과 내용분석(기사 내용 체계적 분류)을 통해 범죄 유형과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밝혔다.
■ 무엇을 발견했나?
분석 결과, 가스라이팅 관련 보도는 2019년 4건(0.5%)에서 2020년 32건(4.5%), 2022년 249건(35%), 2023년 347건(49%)으로 급증했다. 특히 2022년 5월 가평 계곡 살인 사건 관련 기사(53건)가 가장 많았다. 2022년까지 단일 사건 중심이었던 보도는 2023년부터 다양한 사례로 확장됐다.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은 보도를 차지했으며, 전 직장 동료의 성매매 강요, 정치인 데이트폭력, 연예인 친형 횡령, 무속인 부부의 일가족 가스라이팅, JMS 성폭행 등도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권력과 위계가 얽힌 관계에서 발생, 가스라이팅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남을 보여준다.
키워드 기반 토픽 분석은 (1) 계곡 살인, (2) 미성년 학대 및 성범죄, (3) 권위 기반 성폭력, (4) 연예·스포츠 관련 사건 등 4개 주제를 도출했다. 범죄 유형으로는 **성범죄(50.9%)**가 가장 많았고, 살인, 폭행, 사기, 유괴·납치, 절도, 횡령 등이 뒤따랐다.
가해자·피해자 관계는 직장 내(19.5%), 연인(15.3%), 가족(부모-자녀, 부부, 형제자매) 및 사제 관계(각 13.6%)로 다양했다. 범죄 유형과 관계 간 분석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확인했다. 성범죄는 주로 직장, 사제, 연인 관계에서, 살인은 가족 관계에서 발생 비율이 높았다(30%).
■ 연구가 말하는 시사점은?
가스라이팅은 단순한 심리 갈등이 아니라 성범죄, 살인, 사기 등 강력범죄의 전조이자 수단이다. 특히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서 심리적 지배가 강화되며, 미성년자, 여성, 종교·무속 권위 관계에서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가스라이팅이 성차별적 구조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예컨대, 직장 상사의 심리적 압박이나 연인 간 감정 조작도 가스라이팅의 일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내에는 가스라이팅을 다루는 법률이나 제도가 부족하다. 가스라이팅을 심리적 학대로 규정하는 법률 제정, 피해자 상담 프로그램 도입, 경찰 교육 강화 등이 시급하다. 이는 피해자 보호를 넘어 예측 가능한 범죄를 예방하는 경고 체계로 작용할 수 있다. 가스라이팅 피해를 의심한다면, 주변 상담 기관이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 연구 논문 원문
전명희·박정아·이주대(2024). 가스라이팅 관련 범죄기사 분석: 텍스트마이닝과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복지상담교육연구, 13(1), 217-239.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