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나와 헤어지면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자살 협박을 하는 사람에게 “그럼 죽어봐”라고 자극하며 라이터를 건넸는데, 정말 불을 붙여 자살한 경우 라이터를 건넨 사람은 죄가 있을까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심 법원은 자살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남자에 대해 자살방조의 책임을 물어 법정 구속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자살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하며 석방했다.
◈ 1심 자살방조로 법정구속
박OO(26)씨는 여자친구인 오OO씨와 지난해 3월 헤어졌으나, 오씨를 잊지 못해 여러 차례 오씨를 찾아가 “나와 헤어지면 네 앞에서 죽겠다”는 말을 했다. 오씨의 새로운 남자친구인 장OO(30)씨도 이런 사실을 알게 돼 오씨와 함께 박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25일 새벽 3시 30분경 박씨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휘발유를 준비해 PC방에 있던 오씨를 근처 놀이터로 불러낸 뒤 “너 보는 앞에서 죽을 테니까 평생 후회하며 살아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PC방으로 들어가자, 화가 난 박씨는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PC방에 오씨와 함께 있던 장씨를 찾아갔다. 강한 휘발유 냄새에 PC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자, 장씨와 오씨는 PC방에서 나와 승용차에 탔다.
이 때 박씨는 차를 막아서며 “오OO이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말했다. 장씨는 현장을 떠나려고 차를 후진하려 했다.
그런데도 박씨가 계속 따라붙자, 화가 난 장씨는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며, 창문을 열고 라이터를 던져줬다.
잠시 망설이던 박씨는 라이터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결국 화염 화상으로 인해 중상을 입은 박씨는 지난해 12월 사망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자살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자, 장씨는 “피해자에게 라이터를 건넨 것은 사실이지만 분신 자살할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동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조현일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장씨의 자살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여러 차례 자살의사를 표시했던 피해자가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어 분신자살을 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자살을 충동질하는 언사를 하고, 분신에 이용될 수 있는 라이터를 건네준 것은 자살방조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며 “결국 이로 인해 피해자가 자살에 이르게 한 것으로 죄질과 범정이 매우 중하다”고 판시했다.
또 “그럼에도 피해자의 유족에 대해 사죄나 피해 변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이 충분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서울고법 무죄로 석방
이에 불복해 장씨가 항소했고, 서울고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기택 부장판사)는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깨고, 최근 장씨에게 자살방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오씨를 만나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으나, 오씨가 쉽게 설득되지 않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나와 헤어지면 죽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 사건 당일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휘발유를 자신의 몸에 뿌리고 죽겠다고 말한 것은 그만큼 오씨를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실제 자살할 생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가 피고인이 던진 라이터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은 오씨가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씨와 피고인을 그대로 보내게 되면 오씨 앞에서 죽겠다고 한 자신의 말이 빈말에 그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오씨의 마음을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충동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실제로 피해자가 죽을 마음을 먹고 자살의사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는 볼 수 없으며, 달리 피해자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오씨에게 죽겠다고 말했을 때 또는 피고인이 던진 라이터를 주워들었을 때 자살을 결의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행동을 실제 자살할 마음은 없이 오씨의 마음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그러한 피고인이 라이터를 던지면서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한 것은 ‘자살을 결의한 피해자에게 자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피해자가 실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피해자가 실제 자살하거나 몸에 불을 붙이는 행동으로 나아갈 것을 예견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의 자살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먼저 요구되는 피해자의 자살의 결의와 그에 따른 자살행위, 이를 피고인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의 행위가 자살방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또는 자살방조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분신 협박 때 라이터 하나로 지옥과 천당 오가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하는 연적에 라이터 건넨 새 ‘남친’ 무죄 기사입력:2008-07-31 21: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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