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10세 딸 가슴 만진 아빠…대법 ‘추행’

“다소 과한 애정표시가 아니라 강제추행죄에 해당” 기사입력:2008-04-14 12:30:07
술에 취한 아빠가 10세의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함께 잠을 자다가, 딸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면 ‘추행’일까 아니면 ‘애정표시’일까?

1심은 강제추행으로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아빠로서의 다소 과한 애정표시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빗었는데, 대법원이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에 대해 교통정리를 했다.

택시기사 김OO(43)씨는 1996년 10월 자신보다 8살 많은 A씨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A씨에게는 신생아가 있었는데, 김씨는 결혼 이듬해 A씨의 딸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며 친딸처럼 키웠다.

김씨는 평소 어린 딸을 귀여워해 팔 베개를 해 주며 안고 잠을 자곤 했다. 또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딸을 너무 예뻐해 꼭 껴안고 얼굴을 부비곤 했다.

딸은 아빠에게 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간혹 싫어하는 내색을 하기는 했으나,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것임을 알고 진심으로 싫어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난해 3월26일 새벽 3시40분께 벌어졌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김씨는 10세인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가운데 두고 아내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잠을 자던 김씨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딸의 몸에 얹고 오른 손으로는 딸의 엉덩이를 만지며,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졌다.

이 때 딸이 울었고, 이에 잠에서 깬 A씨가 경찰에 신고해 강제 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2006년 6월 아내와 말다툼을 하던 중 거실에 있던 화분을 아내의 무릎에 던지고, 발로 쓰러져 있는 아내의 몸을 수회 밟아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김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과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장진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두 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해 김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그러자 김씨는 “딸이 예쁘고 귀여워서 그런 것일 뿐, 불순한 생각을 갖고 한 것은 아니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7형사부(재판장 송영천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김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아내에게 상해를 입힌 점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추행’에 대한 대법원의 2004년 4월 판례를 인용해 김씨의 행동이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의 행동이 ‘추행’에 해당한다기보다는, 아버지로서 취중에 딸에게 다소 과한 애정표시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무죄 이유는 이렇다.

김씨가 평소 딸을 친딸처럼 키우면서 팔 베개를 해 주는 등 안방에서 같이 잠을 자다가 엉덩이를 만지기도 한 점, 딸도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자신을 껴안고 얼굴을 부비는 아버지가 싫지 않았던 점, 특히 딸이 만 9세의 초등학교 4학년생으로서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불복해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 제2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지난 4월10일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추행’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추행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의 피고인의 행위는 단순한 애정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행해진 유형력의 행사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추행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아버지로서 취중에 딸에게 다소 과한 애정표시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가 많아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강제추행죄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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