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브리핑만을 믿고 무고한 시민을 납치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그의 이름과 사진을 뉴스 방송에 보도한 방송사와 해당 기자에게 법원이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었다.
KBS는 지난해 3월1일 KBS2 TV 뉴스타임 방송에서 ‘골프장 사장 납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인천공항경찰대는 특히 범행에 사용된 렌터카가 폭행치사 혐의로 지명수배 된 50살 한OO씨가 빌린 것을 밝혀내고 한씨의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한씨의 사진과 이름을 방송에 내보냈다.
또한 이날 11시에 방송된 KBS 1TV 뉴스라인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3월13일 변호사 김OO 등이 한씨의 명의를 도용해 범행에 사용된 렌터카를 빌렸으며, 한씨는 납치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혔다.
그러자 KBS는 이날 밤 9시 ‘KBS1 TV 뉴스9’에서 “이 사건 납치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빌린 명의자를 지명수배자 한씨로 조작한 사람은 김 변호사였다”는 요지로 정정보도를 했다.
아울러 KBS는 지난해 8월5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이 사건 방송을 뒤늦게 삭제했다.
이에 한씨와 가족은 “KBS의 방송으로 명예가 훼손되고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KBS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고, 인천공항경찰대의 공식적인 수사발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이 사건 방송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맞섰다.
서울남부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김성곤 부장판사)는 한씨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KBS와 이를 보도한 기자에 대해 “한씨에게 2000만원을, 또한 한씨의 부인과 아들, 어머니에게도 정신적 위자료로 각각 500만원씩 지급하라”고 선고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피의사실과 함께 피의자의 성명과 초상을 공개하는 경우에는 그로 인해 침해되는 명예훼손의 정도가 중대하고, 특히 그 공개가 잘못 이루어지는 때에는 사실상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침해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이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수사발표에 따른 것이라는 사정만으로는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는 없고, 피의자의 성명과 초상의 공개가 용인될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또 피의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자체적으로 수사기록을 검토하거나 기타의 사실확인절차를 통해 더욱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고들은 방송이 납치범행의 피의자 검거를 위해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수배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어서 위법성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인천공항경찰대가 언론에 공식적으로 원고의 사진과 실명을 밝히면서 그의 공개수배를 요청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들의 항변은 이유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KBS가 한씨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며 납치사건에 관련된 사람으로 지목하는 내용으로 방송해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을 침해했고, 한씨의 가족들 또한 이 방송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따라서 이 사건 방송으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위자료 액수와 관련 “언론기관으로서의 KBS의 지위 및 영향력, 방송을 하게 된 경위, 프로그램 방송 시간대, 방송의 형식과 내용, 한씨가 납치범행과 무관함이 밝혀진 후로도 5개월 남짓 KBS 홈페이지에 방송 내용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었던 점 등을 종합해 손해배상액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무고한 시민 납치범으로 보도한 KBS 배상책임
“자체 확인 없이 수사기관 발표만 믿고 보도해선 안 돼” 기사입력:2008-04-10 12: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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