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왜 불탔나…사법불신이 불만 키워

판검사와 변호사까지 불신…창경궁 놀러 갔다가 방화범 신세 기사입력:2008-02-19 12:32:42
600년 역사의 ‘국보 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든 방화범 채OO(70)씨의 직접적인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서울남대문경찰서가 채씨의 집에서 발견해 12일 공개한 ‘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A4용지 3장 분량의 채씨의 자필 편지를 보면 범행동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집과 토지가 수용되면서 받은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해 제기했던 민사소송에서 패소하고, 또한 채씨의 주장대로라면 우연히 창경궁 화재 현장에 있다가 방화범으로 몰려(?) 죄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사법부에 대한 냉소적인 불신이 원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본지는 채씨가 제기해 패소했던 민사소송과 창경궁 방화 사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며, 채씨가 왜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범행을 저질렀는지 사건의 실체를 파헤쳤다.

◈ 민사소송 왜 제기했나 = 고양시 일산동 목조기와주택에 살던 채씨는 집과 부지가 2002년 8월 H건설에서 짓는 아파트 출입을 위한 도시계획도로로 수용돼 토지 28평과 주택 20평을 포함해 보상금으로 9,68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채씨의 4억원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였기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나 중앙토지수용위원회도 2003년 1월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금 310만원을 증액해 줬을 뿐이었다. 결국 채씨가 받은 보상금은 총 9,990만원.
그러자 보상금이 적다고 생각한 채씨는 몇 달 뒤 법원에 H건설과 아파트 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2억 8,680만원을 지급하라”며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채씨는 소장에서 “인근 토지의 정상거래가격은 평당 600만원을 넘는데도 내 땅은 1/3 수준으로 낮게 평가됐고, 주택 또한 통나무 원목 등을 사용해 견고하게 건축한 주택으로서 건축비가 최소 평당 600만원이 든다”고 호소했다.

채씨는 그러면서 “토지 정상거래가격 1억 6,680만원(27.8평×600만원)과 주택 1억 2,000만원(20평×600만원)을 합한 2억 8,68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행정법원 제2부(재판장 한경현 부장판사)는 2003년 10월 “피고들은 연대해 채씨에게 72만 5,000원과 이자만 지급하라”고 판시했을 뿐 채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씨가 받은 보상액 총액은 1억 62만원.

재판부는 “토지와 주택에 대한 감정을 맡았던 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인들의 보상액 평가에 있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다만 “주택에 대한 정당한 손실보상금은 3,317만원인 만큼 차액 72만 5,000원을 더 지급하라”고 밝혔다.
일부 승소했으나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채씨는 고양시청과 대통령 비서실 등에 수 차례에 걸쳐 진정과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채씨는 수용을 거부하며 철거할 수 없다고 버티자, H건설은 2006년 2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받아 강제 철거하고 왕복 4차로 도로를 개설했다.

채씨의 편지를 보면 아마도 이때부터 사법부와 정부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채씨는 편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집과 없어진 대지의 시가가 4억인데 1억도 안 되는 공탁을 걸고 강제로 철거시켰다”며 “정부에 억울함을 수차례 진정했으나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 창경궁 방화사건 = 불씨에 기름이라도 끼얹듯 채씨의 사회적 불만을 고조시킨 것은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린 방화사건이었다.

채씨는 2006년 4월 27일 오후 5시경 문화재인 창경궁 내 문정전에서 출입문 안쪽에서 발생한 부탄가스 폭발 방화 현장에서 거동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시민 이OO(41)씨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당시 문화재 방화 사건은 지상파 방송을 등을 통해 보도됐다.

한편 검찰은 “채씨가 창경궁 문정전 출입문 안쪽에 신문지를 놓고 그 위에 전날 구입한 휴대용 부탄가스 4통을 놓은 상태에서 신문에 불을 붙여 가스가 폭발하면서 불길이 번지도록 해 문정전 출입문과 벽 등을 불태웠다”며 기소했다.

아울러 검찰은 “채씨가 소송에서 패소하고, 제기한 진정마저 자신의 뜻대로 해결되지 않은데 불만을 품고 문화재에 불을 질러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방화했다”며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2006년 7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채씨에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해 600만원을 공탁한 점, 68세의 고령인 점, 특별한 전과는 없는 점, 불에 탄 문정전 건물은 1986년에 복원된 것으로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훼손 정도가 아주 중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민사사건과 방화사건 이후 채씨는 부인과 이혼하기도 하는 등 갑자기 평온했던 삶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사회적 불만은 고조됐다.

◈ 사법부 불신 팽배 = 하지만 채씨의 편지를 보면 억울하다는 하소연과 함께 특히 검사, 판사, 변호사를 포함한 사법부 전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채씨는 “(집이) 철거당한 후 2개월 있다가 창경궁에 놀러 갔는데, 불난 곳에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아무 증거도 없이 방화범으로 몰렸다”며 “경찰은 혐의 없다고 했는데, 검사는 (방화범의) 뒷모습이 내 뒷모습과 같아 방화범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판사님에게 과학수사를 해 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았다”며, 앞서 패소한 소송사건과 마찬가지로 판사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변호사에 대한 불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채씨는 “변호사는 법에서 방화범으로 몰면 하는 수 없으니, 거짓 자백을 하고 나오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했다”며 “변호사가 수차례 거짓 자백을 건의했고, 아들과 사위도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거짓 자백을 건의했다”고 변호사의 회유로 인해 거짓 자백했음을 항변했다.

아울러 “변호사가 하는 말이 판사 앞에서는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판사가 낭독할 때 가만히 서 있던 죄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법에서는 옳은 말은 들어주지 않고, 거짓말은 그렇게 잘 들어 주는지 조사도 해보지 않고 변호사 말은 100% 믿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나아가 “(문화재) 화재손실액 500만원에 대해 변호사는 500만원을 공탁했다가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찾는 것은 고사하고 추가로 1300만원을 내라하니 정부는 약자는 죽이고 법을 알고 권세 있는 자의 죄는 조금 묻는다”고 분개했다.

채씨는 끝으로 “나는 억울하다. 사회에서 약한 몸에 무거운 죄로 양어깨를 누르고, 자식들도 거짓 자백을 권유하고도 아버지 잘못으로 돌린다. 세상이 싫어진다. 자식이라도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채씨는 이번 경찰조사에서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명히 밝히면서도, 창경궁 방화 사건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고 거듭 항변했다.

따라서 수사기관과 사법당국은 비록 토지보상 문제로 사회적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정신병 치료 전력도 없고 특별한 전과도 없던 70세의 채씨가 자신의 주장처럼 방화범으로 내몰리면서 극한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곱씹어 봐 창경궁 방화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은 99명의 도둑은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죄인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언을 상기해야 할 대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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