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결혼식을 치른 한달 후 B씨는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A씨의 호적등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이미 지난 93년 다른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을 뿐 아니라 아들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B씨가 “왜 속였느냐”며 이 같은 사실을 따지자 A씨는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것이고, 이혼 및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호적을 정리 한 후 당신과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변명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랑하던 감정이 남아있던 B씨는 이 말을 믿고 동거를 계속했다.
하지만 A씨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이에 B씨가 “헤어지자”고 요구하자 A씨는 오히려 B씨를 폭행하며 “헤어지자 말하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해 결국 B씨는 언니 집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A씨는 B씨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혼수품으로 해 온 컴퓨터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갖고 이사를 갔고, 결국 B씨는 혼인빙자간음, 폭행 및 절도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
이에 B씨는 혼인빙자혐의에 대해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지난 10일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호적등본을 보고 법률상 유부남인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혼인신고는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한 것이고, 이혼 및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호적을 정리한 후 당신과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등의 말을 믿고, 정교관계를 계속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혼인빙지간음죄에 있어 고소기간의 시점인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혼인할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된 때는, 피고인이 법률상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가 아니라, 피고인이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피해자의 혼수품을 절취해 이사한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형법 제304조에서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