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도라산역 벽화 국가 소유라도, 일방 철거는 미술가 인격권 침해”

“국가는 벽화 예술가 이반 교수에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 기사입력:2015-08-27 13:17:40
[로이슈=신종철 기자] 정부가 미술가에게 의뢰해 경의선 철도 도라산역에 통일염원을 상징하는 그린 벽화를 3년도 안 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소각한 것은 위법해 미술가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대법원이 국가 소유의 미술작품 폐기행위에 대해 저작자(예술가)의 일반적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한 것이다. 국가가 소유권을 가진 미술품이더라도 작가(미술가)에 통보도 없이 마음대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무슨 일이 있었나?

법원에 따르면 통일부는 2006년 3월 미술가 이반(76) 교수에게 ‘경의선 철도출입시설의 공간 활용 계획의 일환으로 통일문화광장을 도라산역사 내에 조성하려는데, 이를 위해 도라산역 방문객들에게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 제공해 줄 것’을 의뢰했다.

오랫동안 대학교수로 활동해 온 이반 교수는 2007년 1월 건축공사를 실제 시공하는 건설회사와 도라산역사 내에 미술품을 제작해 설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이반씨는 도라산역사 내 벽 및 기둥들에 ‘포토콜라쥬’ 기법을 활용한 14점의 벽화(이를 더하면 폭 2.8m, 길이 100여 미터에 이르는 대형벽화가 완성된다)를 제작해 설치했다.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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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 건축공사를 완료한 건설회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게 시설물 일체를 인도했고, 공단이 2008년 1월 이를 다시 통일부에 인도해 이 벽화는 정부 소유가 됐다.

그러데 통일부는 2010년 2월 도라산역 관광객의 부정적인 여론(전반적으로 색상이 어둡고, 그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민중화로 ‘무당집’ 분위기를 조성해 공공장소인 도라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이 있다는 이유로 도라산역 관광객 1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개최한 다음 교체 의견이 제기되자 2010년 5월 벽화를 철거했다.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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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공사는 벽화에 물을 분사해 원래의 규격보다 작은 규모로 벽화를 절단해 벽체와 벽화를 박리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이반 교수는 2010년 6월 벽화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통일부 산하 남북출입사무소에 벽화의 철거 이유, 철거로 인한 훼손 여부, 현재의 보관 상태 등을 질의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이에 남북출입국사무소 소장은 “벽화의 난해성, 어두움 등을 이유로 철거했고, 철거 시 벽화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부득이하게 손상된 부분이 있으며, 현재 벽화 전체를 남북출입사무소 내 적절한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통일부는 이 벽화를 철거한 이후 남북출입국사무소 내 어느 공간에 이를 방치하다가 2011년 초경 도라산역 인근 공터에서 벽화를 소각했다.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도라산역에설치됐던이반교수작품(사진=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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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반 교수가 “통일부가 벽화에 물을 분사, 벽체와 벽화를 박리시키는 방법으로 철거했고, 철거과정에서 벽화를 훼손했으며, 이후 소각했는데 이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 1심 원고 패소 판결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는 2012년 3월 이반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기각하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벽화 파괴 행위를 함에 있어, 벽화에 대한 관광객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근거로 설문조사 및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내부적 절차를 거친 점에 비춰 볼 때, 피고가 벽화에 대한 부적절한 평가를 해 벽화를 파괴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고의 정책 판단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근거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원고의 예술의 자유 내지는 인격권이 침해됐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항소심 “국가는 이반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 지급하라” 왜?

반면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재판장 권택수 부장판사)는 2012년 11월 “피고(국가)의 벽화 폐기행위는 원고(이반)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위자료 1000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 산하 남북출입사무소 소속 공무원이 벽화를 철거한 후 소각한 행위는 원고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객관적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위법한 행위”라며 “그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국가의 벽화 폐기 과정도 지적했다.

국가는 관람객 140명에 대한 15일간의 설문조사와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내부 위원 1명, 외부 전문가3명)의 의견을 수렴해 벽화의 철거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는 설문조사의 최종결과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설문지의 내용이나 실제 응답내용 등에 관한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않고, 나아가 외부전문가들이 벽화를 철거해야 할 이유로 지적한 ‘작가 개인의 지나친 부각’, ‘관광객의 이해 곤란’, ‘어두운 색채와 반복적 내용’은 이미 벽화의 제작에 앞서 도안을 검토하기 위해 열린 회의에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이 지적한 사항과 같은 것이어서 이를 다시 철거의 이유로 삼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국가는 벽화 제작ㆍ설치와 철거에 관해 자문한 외부전문가들의 인적사항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가 벽화의 철거를 결정하기 위해 거친 위와 같은 절차는, 공론의 장을 충분히 거쳤다고 볼 수 없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으며, 그 철거가 어떠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또 피고가 벽화의 내용이 부적절함을 이유로 이를 소각하는 방법으로 폐기해 버린 것은 규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재판부는 정부가 벽화를 소각할 예정임을 이반 교수에게 미리 알렸다면 이 작품이 후대에도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길 바랐던 이반 교수가 자신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다시 매수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봤다.

◆ 대법원 “국가의 위자료 책임 인정한 원심 정당”

사건은 국가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7일 이반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2다204587)에서 “국가가 이반씨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문화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가 저작물이 화체된 유체물을 폐기하는 행위는 그것이 비록 그 유체물에 대한 소유권에 근거한 처분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작가가 가지는 예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므로, 저작물이 화체된 유체물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를 부당하게 제약해서는 안 된다”며 “결국 해당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정도, 국가가 이를 선정해 설치하게 된 경위, 폐기의 이유와 폐기 결정에 이른 과정 및 폐기 방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폐기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할 정도인 경우에만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명망 있는 작가인 원고는 특별한 역사적ㆍ시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피고(국가)의 의뢰로 설치된 벽화가 상당기간 전시되고 보존되리라고 기대했고, 피고도 벽화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홍보까지 했으므로 단기간에 이를 철거할 경우 원고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이 침해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가 벽화의 설치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사유를 들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철거를 결정하고 원형을 크게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철거 후 소각한 행위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의 이러한 벽화 폐기행위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예술창작자로서 갖는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이나 명성 등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보호를 바탕에 두고 적극적으로 국가배상법과 같은 개별 법률을 해석함으로써 국민의 권리구제를 실현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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