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회사 관리직을 맡은 뒤 급격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근로자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대법원은 인정했다.
법원에 따르면 40대 중반인 A씨는 1988년 기계생산 회사에 입사해 2006년 11월까지 18년간 모터조립, 연료펌프조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2009년 5월까지 생산품의 품질체크, 결원 발생 시 대체작업, 파손된 공구 교환 등 조원들에 대한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회사는 2009년 5월 기존 2조 2교대 근무에서 3조 3교대로 작업형태를 변경하면서 20년 경력자로 능력이 우수한 A씨에게 B조의 리더를 권했고, 고심 끝에 리더직을 수행하게 됐다. 리더 자리는 향후 개인별 역량에 따라 조장, 반장, 직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능직 사원 진급의 최초단계다.
A씨는 내성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려는 성격이었다. 또 리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우징’에 대해 새로 배워야했고, 조원 9명 중 5명이 타부서에서 발령받아 왔으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으며, 제품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조사를 하는 등 리더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 우울증에 시달리다 신경정신과치료까지 받게 됐다. 이에 A씨는 2009년 6월 회사에 리더직 포기 의사를 전달했고, 이후 일반직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A씨는 2009년 7월 24일 회사를 결근하고, 한의원에 간다면서 집을 나갔다가 늦은 밤 창원시 소재 안민고개에서 혼자 벌벌 떠는 등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여 등산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가족에게 데려다 주기도 했다. 당시 A씨는 헛것을 보고 돌아가신 아버님이 자기를 부른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이틸 뒤인 7월 26일 집에서 있던 중 유서를 남기고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가족에게 발견돼 바로 병원에 후송됐다. 이후 저산소 뇌손상으로 입원치료를 받던 중 2011년 8월 병원에서 사망했다.
A씨는 회사에서 리더를 맡은 후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아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서 치료를 받던 중 자살을 시도해 ‘우울증, 불면증, 무산소성뇌손상’의 진단을 받자, 2009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으나, 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A씨가 사망하자 처인 B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을 냈고, 1심인 창원지법은 2012년 10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업무 변경이 다소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측면은 있더라도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망인이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인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행정부도 2013년 9월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 1심과 항소심은 업무상재해 인정 안 받아줘…대법원은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망인 A씨의 처인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2013두21328)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 기계부품류의 생산ㆍ가공 업무만을 수행하던 망인이 회사의 작업형태 변경에 따라 두 차례 고사한 끝에 작업장의 리더직을 새로 담당하게 되면서,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는 성격의 망인으로서는 중압감과 불안감에 시달렸고, 조원들 중 다수가 다른 부서에서 전입하거나 망인보다 나이가 많아 작업방식에 대한 지시ㆍ통솔에 어려움을 겪는 등 심한 스트레스가 누적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 인해 망인은 리더직을 맡으면서부터 급격히 우울증세를 나타내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해온 것으로 보이고, 리더 업무를 수행하던 중인 2009년 6월 15일부터는 근무형태 변경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우울증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았으며, 리더직을 그만둔 7월 1일 무렵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악화돼 자신을 통제할 능력이 결여된 정신병적인 증상을 보이기에 이르렀고 리더직을 그만 둔 후에도 망인의 자살 시도 전날까지 계속 우울증세 등에 대해 치료받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평소 동료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 왔고, 우울증 등 신경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전혀 없으며, 또한 업무 외의 다른 요인으로 위와 같은 증상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며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업무환경의 변경 및 그로 인한 업무 수행의 어려움에 따라 망인이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를 받게 돼 급격히 우울증이 유발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장기간 특별한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근무해 오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온 망인이 리더직을 맡은 후부터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동료들로부터 예전보다 크게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세를 보였고, 실제로 우울증이 발병해 치료를 받았으며, 특히 리더직을 그만 둘 무렵에는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돼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우울증이 악화되기에 이르렀으므로, 이런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망인이 받은 정신적인 고통과 그로 인해 발생ㆍ악화된 우울증은 매우 심각한 정도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 및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망인에게 발병한 우울증이 악화돼 망인이 자살 시도 무렵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나머지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망인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거나 망인이 자살을 시도한 시기가 리더직의 수행을 그만 둔 후라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망인에게 노출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객관적으로 봐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킬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보기 어려우며, 망인이 우울증을 앓게 된 주요 원인이 개인적 소인에 있다는 이유로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말았다”며 “이런 원심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에서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리직 맡고 스트레스로 우울증 시달리다 자살…업무상재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 및 정신적인 고통으로 발병한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 시도” 기사입력:2015-06-17 16: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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