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살려 달라는 친한 후배를 생매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 4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통해 살인의 유죄 판단 배경을 들여다봤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41)씨는 2007년 10월 용인시 일대에서 일용직 중장비 기사인 속칭 ‘스페어기사’로 일하면서 같은 일에 종사하던 B(당시 31)씨를 만나 친하게 됐다.
A씨는 이듬해 2월 공사현장에 스페어기사를 공급하는 업체를 동업하기로 하고 B씨로부터 사무실 운영자금 명목으로 800만원을 받았으나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에 여권판매 사업을 동업하려 했으나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이마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B씨의 돈 490만원이 들어갔다.
그동안 성실하게 생활해 왔던 B씨는 A씨와 어울려 다니면서 아내와 불화를 겪다가 2008년 4월 협의이혼하게 됐다. 그러나 B씨는 이혼 후에도 아내의 부탁으로 막내아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는 등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 또한 부모와 형제, 친구들 사이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그해 4월말 실종될 때까지 연락이 두절된 적도 없었다.
2008년 4월 하순 당시 다른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후 보호관찰 중에 있던 A씨는 친한 사회 동생인 B씨로부터 ‘그동안 투자한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자 순간 격분해 주먹으로 급소를 가격해 쓰러드리고, 정신을 잃은 틈을 이용해 구덩이에 B씨를 밀어 넣었다.
정신을 차린 B씨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A씨는 이를 무시한 채 굴삭기를 이용해 흙을 B씨 위에 부어 묻음으로써 질식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실종으로 처리됐다가, 한때 3년 동안 동거했던 L(여)씨가 2010년 11월 A씨와 헤어지고 난 후 경찰에 “A씨가 B씨를 죽였다”고 제보하면서 드러났다.
하지만 A씨는 “피해자를 살해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사망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실제로 B씨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 부모와 형제, 자녀, 친구 등 어느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재판장 최동렬 부장판사)는 지난 7월18일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는 친한 동생을 구덩이에 묻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기소된 A(41)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배심원 9명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고, 형량은 6명이 징역 13년, 3명이 징역 15년의 의견을 냈다.
피해자 사망 여부와 관련, 재판부는 “실종되기 전까지 부모와 형제, 친구 등과 연락이 두절된 적이 없었던 피해자가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 4년이 넘도록 어느 누구와도 연락이 닿은 바 없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의료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이용한 바 없다”며 “피해자의 평소 생활태도, 가족들과의 관계, 행적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2008년 4월28일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B씨는 아내와 이혼한 뒤 A씨의 집 근처 여관에 머물렀고, 사건 당일 휴대폰을 신규 개설한 B씨가 A씨를 만난 뒤 행적을 감추며 실종됐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또한 A씨가 자신의 차량을 팔고 전세금을 빼내 중국으로 도피한 점과 게다가 동거녀였던 L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공사현장에서 피해자를 구덩이에 묻어 살해했는지에 관해 가장 핵심적인 증거로는 동거녀였던 L씨의 전문진술 외에 달리 증거가 없다”며 “그런데 L씨는 피고인과 동거할 당시인 2008년 5월2일 아산에 있는 모텔에서 피고인의 아들을 재우고 단둘이 있는 가운데 피고인으로부터 공소사실 내용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므로 이런 당시 상황은 피고인의 진술내용에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L씨는 ‘피고인과 함께 일했던 피해자가 피고인보다 2~3살 어렸고,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자녀가 3명 있었다’고 특정했는데, 2008년 5월15일 피고인과 출국한 후 한국에 입국한 적 없는 L씨로서는 피해자의 생사여부나 실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제보를 했다는 점에서 이를 허위로 꾸몄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L씨의 진술은 내용이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아산으로 놀러갔다 온 후 중국으로 떠날 준비만 서두른 점, 3년간 동거해 온 L씨와 중국으로 도피하려고 마음먹은 피고인으로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L씨의 도움이 절실해 중국으로 가지 않으려는 L씨를 설득하는 위해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봤다.
게다가 L씨는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의 옷가지, 휴대폰, 지갑, 신분증을 불에 태우는 것을 봤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고인 역시 피해자의 옷가지를 태운 사실을 인정하는 점도 살인 판단의 근거가 됐다.
피고인이 갑자기 사라진 피해자를 찾지 않은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실종될 무렵 피고인의 집 근처 여관방에서 숙박하면서 피고인과 ‘스페어사무실’을 운영하거나 위조여권 판매사업을 진행했고, 피고인과는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였다”며 “그런데 피고인은 피해자가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후 피해자를 전혀 찾지 않은 점 등은 피고인이 피해자 사망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충분한 간접사실이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신빙성 있는 L씨의 전문진술과 여러 간접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구덩이에 묻어 살해했다는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된다”며 “또한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쉽게 발견될 수 없는 곳에서 자살 또는 자연사, 추락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나, L씨의 전문진술 및 피고인의 행적에 비추어 합리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L씨가 자신과 헤어지고 위자료 2억 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자신을 무고하기 위해 허위제보를 했다고 주장하나, L씨는 피고인으로부터 처음 만났을 때 빌려간 700만원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고, 이후 3년간 동거관계를 유지하면서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실현가능성 없는 위자료 2억원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형에 대해 재판부는 “살인 범행으로 피해자가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고, 피해자의 유가족은피해자의 생사도 모른 채 4년을 보냈으며, 피해자를 잃은 유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임이 충분히 예상된다(피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 실종 후 농약을 마시고 자살)”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법정에서 표출될 때마다 주장을 덧붙이고, 순간순간의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해서든 처벌만 모면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들에게 가혹행위와 욕설,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으나, 피고인이 당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고 변호인과 함께 조사를 받은 바 있는 점, 변호인이 그 당시 경찰관들로부터 피고인과의 자유로운 면담을 제지당했다거나, 경찰관의 가혹행위, 욕설, 폭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바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허위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살아있는 피해자를 흙으로 묻어 생매장한 것으로서 범행수법이 대범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점, 피해자는 피고인을 믿고 따랐던 친한 후배로서 피고인과의 사업 때문에 처와 이혼하고 여관에서 생활하면서까지 피고인에게 사업자금을 마련해 준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피고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 질타했다.
‘시신 없는 살인사건’ 피고인, 국민참여재판 중형
서울중앙지법 “징역 15년…동거녀 진술에 신빙성 있어 유죄 증거 돼” 기사입력:2012-08-20 15: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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