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상급자들의 폭언 등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한 병사가 소총으로 자살한 경우 국가에게 8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안OO(21)씨는 지방 국립대 1학년을 마치고 2006년 5월 지원 입대해 휴전선 최전방 GOP 경계부대에 배치돼 박격포병으로 근무했다.
안씨는 평소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박격포병으로 근무할 당시만 해도 쾌활하고 의욕적인 자세로 군 생활을 했으며 부대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그런데 안씨가 근무하던 중대 중대장은 2006년 10월 중대본부 정보통신병이 제때 충원되지 않자, 박격포병은 주특기 변경이 불가능한데도 임의로 안씨의 보직을 정보통신병(중대장 전령업무 겸함)으로 변경했다.
안씨는 전임자인 병장이 전역을 앞두고 정기휴가를 떠난 2006년 10월 중순부터 직무교육과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정보통신병 업무와 전령 업무를 수행해 가면서 큰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중대본부 선임병인 최OO 일병에게 업무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업무파악에 어려움이 많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하곤 했다.
또한, 안씨는 거의 매일 중대장과 함께 험준한 산악지역을 도보로 야간 순찰하면서 무릎에 통증이 생겼고, 야간 순찰을 마친 후에도 통신장비 파악 등 지시사항을 수행하느라 바로 취침하지 못해 잠이 부족한 날이 많았다. 이런 사정을 중대장이나 분대장 등에게 호소하기도 했으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평소 병사들로부터 과격하고 다혈질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고 있었던 상사 A씨는 잘못을 지적한다는 이유로 매주 2∼3회 약 1시간 30분 정도씩 중대원들을 집합시켜 험한 욕설과 함께 질책하며 폭언을 하곤 했다.
특히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 통신업무가 서툴렀던 안씨에게는 업무 미숙을 지적하면 수 차례에 걸쳐 잦은 욕설과 폭언을 퍼부으며 혼을 냈다.
이에 안씨는 선임병에게 “죽겠습니다. 자살 게이지 100%입니다”라고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고, 부대 동기에게도 “나는 통신병이 아닌데,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안씨는 2006년 12월27일 상황병 병장으로터 심한 욕설과 함께 “이따 오면 두고 보자”라는 위협적인 말을 들었고, 또 중대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으며, 상사로부터도 심한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
참다 못한 안씨는 다음날 새벽 야간 순찰을 위해 기상했다가 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총을 쏴 자살하고 말았다.
한편 상사는 모욕과 언어폭력 등으로 근신 5일, 병장은 가혹행위로 영창 5일의 징계처분을 받은 바 있다.
전주지법 제4민사부(재판장 이정석 부장판사)는 16일 “상급자들의 폭언으로 자살했다”며 망인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5,07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반 사회와는 달리 엄격한 규율과 집단행동이 중시되는 군대 사회, 특히 휴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GOP에서는 그 통제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상급자의 공개적인 폭언과 인격모독의 폐해가 일반 사회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심각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가 자살할 만한 다른 특별한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특히 간부와 선임병의 지속적인 욕설, 폭언 등 가혹행위는 망인이 자살을 결의하는데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부대 내의 가혹행위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의해 안씨의 자살로 인해 망인 및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상급자들이 가혹행위 등 비행이 있었더라도 그 정도가 보통의 군 복무 중인 사병을 기준으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중한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상급자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소속 지휘관 등에게 그 시정을 요구하거나 이를 좀 더 참고 극복하려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잘못이 있으므로, 피고의 책임 비율을 80%로 제한한다”고 말했다.
상급자 폭언으로 사병 자살…국가 80% 책임
전주지법 “부대 폭언과 인격모독 폐해는 치명적 결과 초래” 기사입력:2008-05-21 14: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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