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80대 시어머니가 갈비뼈 13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제대로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며느리가 1년6개월만에 결백을 입증,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OO(43·여)씨는 시어머니를 폭행한 뒤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유기치사)로 2006년 12월 경찰에 구속됐다. 이후 박씨는 ‘패륜 며느리’로 낙인 찍혀 세상으로부터 모진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돌아가신 할머니를 모시기도 하면서 할머니와 사이가 좋았던 박씨의 두 딸이 “엄마는 억울하다”며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법무법인 국제의 진동렬 변호사는 무료변론이나 다름없는 실비만을 받고 변론에 나서며 사건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 폭행과 외도로 가출 = 박씨의 사연은 기구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중퇴한 박씨는 당시 열아홉 살이던 1984년 김OO씨와 결혼해 경남 의령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두 딸을 낳았다.
그런데 박씨는 남편의 폭행과 외도에 지쳐 1996년 가출한 뒤 시댁과의 인연을 끊은 채 부산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아이스크림 행상을 하며 혼자 근근히 생활해 왔다.
시어머니 A(사망 당시 81세)씨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1983년, 큰아들은 2006년 6월 각각 사망했고, 박씨의 남편이자 둘째 아들인 김씨는 2002년 사망했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던 박씨의 둘째 딸은 2005년 시집을 간 뒤 시골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할머니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수시로 할머니를 찾아가 돌보았다.
그러던 중 2006년 2월 박씨는 둘째 딸로부터 “할머니가 다 죽어간다”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시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가보니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치매증세가 있었고 건강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 손에서 자라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손녀들인 자신의 딸들이 “엄마가 할머니를 모셨으면 한다”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해 가출한 이후 시댁과의 인연을 끊고 살아왔고, 이후 단칸방에서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형편인 데다가 손위 동서들이나 조카들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사망한 전 남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를 모실 이유가 없었고, 그럴만한 형편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박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가출하는 바람에 성장기에 상처받아 관계가 소원해진 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향후 딸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를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모시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의 단칸방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시어머니가 고령에다 치매증세까지 있어 이웃들이 시어머니를 보호시설에 맡기는 게 낫다고 권유했으나, 박씨는 이를 뿌리치고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고 평소 병원이나 교회, 친척집에 함께 다닐 정도로 나름대로 성심껏 모시고 살았다.
그러자 과거 소원했던 딸들과 자주 왕래하며 지내는 등 실제로 모녀간의 사이가 개선되기도 했다.
◈ 시어머니 잘 모셨건만 = 그러던 중 2006년 11월7일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치매증세를 보이던 시어머니가 부엌 선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박씨는 시어머니의 양어깨를 잡고 뒤로 당겨 일으켜 세워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 때 시어머니는 부엌과 방문사이의 나무로 된 10cm 정도의 문지방에 가슴부분을 부딪쳐 엎어졌다. 이를 보고 놀란 박씨는 엎어져 있던 시어머니를 옆으로 돌려 양쪽 팔로 안았다.
그 순간 시어머니는 목을 좌우로 흔들며 약간 괴로워 해 박씨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줄 알고 목과 가슴 사이를 10분 정도 눌러 진정시켰다. 이후 별다른 증상이 없었으나 다음날 시어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에 박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집 계단을 내려오던 중 시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당황한 박씨는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시어머니의 안면 열상만 치료하고 귀가시켰는데, 당시 시어머니는 혼자 걸어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집에 돌아온 후 거동을 못하고 계속 누워 있다가 11월12일 오후 6시에 사망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박씨는 이날 오후 8시경 저녁을 먹으려고 시어머니를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
한편 박씨는 시어머니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평상시와 다름없이 의사가 처방한 약과 식사를 시어머니에게 제공했고, 사망 당일에는 시어머니를 위해 전기담요까지 구입했다.
사체 부검결과 갈비뼈 13개가 부러진 것으로 나왔고, 이로 인해 저산소증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이로 인해 박씨는 시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유기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 법원은 무죄로 판단 = 하지만 1심인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지난해 6월 유기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씨에게 “전 남편의 모친을 모신 피고인이 피해자를 유기했다고 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또 그렇게 볼 뚜렷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문에서 “자신의 몸도 성하지 않은 피고인이 매일 일용노동으로 단칸방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이미 사망한 전 남편의 모친이 노환으로 치매증세까지 있고, 손위 동서가 둘이나 있는데도 이를 개의치 않고 기꺼이 피해자를 모시면서 보호·부양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고인에게 왜 피해자를 죽게 내버려뒀느냐고 따지거나, 나아가 죽음에 대한 죄책까지 물을 수는 없다”며 “그런 피고인에게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것은 피고인과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으로 온당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고 판시했다.
그러자 검사는 항소했고,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우성만 부장판사)는 최근 1심 판단을 유지하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대로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건강상태에 있었다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점을 알았다거나, 나아가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점을 예견했다거나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피해자를 유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치매 시어머니 유기치사…패륜 낙인 며느리 무죄
사망한 전 남편 모친 성심껏 모셨는데…구속 뒤 무죄 받아 기사입력:2008-03-27 11: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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