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7세 쿠사마 야요이, 2018년 『신초』에 담긴 ‘슬픔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재조명

기사입력:2026-09-02 10:55:00
사진제공=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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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슈 진가영 기자] “슬픔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은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다. 이 문장이 발표되고 8년 뒤인 2026년 8월 14일, 쿠사마는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별세 소식은 같은 달 27일 공식 발표됐으며, 쿠사마는 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창작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대중이 그의 호박과 물방울에 환호를 보내던 때 쿠사마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이 글은 일본 문예지 『신초(新潮)』 2018년 1월호에 게재됐다. 당시 ‘신초’에는 쿠사마의 신작 시와 미발표 회화가 소개됐으며, 목차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愛と死の対決(사랑과 죽음의 대결)’이라는 제목이 실렸다.

한국에서 쿠사마의 초기 서적과 잡지, 전시 포스터, 초대장, 엽서, 신문 등 관련 기록을 수집해 온 쿠사마 아카이브 위승용 대표를 만나 쿠사마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쿠사마가 ‘신초’에 남긴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쿠사마는 ‘나는 지금 인생의 만년을 맞이하고 있다’라며 자신의 삶이 마지막 시기로 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상처 입은 추억과 지나간 청춘, 멀어져 가는 사랑, 언젠가 사라질 육신을 언급하는 것만 보면 ‘사랑과 죽음의 대결’은 노년의 예술가가 죽음을 기다리며 쓴 비관적인 글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쿠사마는 그 자리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것은 절망이 아닌 사랑과 희망이었습니다.

쿠사마는 ‘生の極みは何であったのか(삶의 극치는 무엇이었던가)’라는 글에서 슬픔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쓰면서도, ‘사랑을 위해 나는 살아왔다’며 자신의 마음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전하고 싶다는 뜻을 풀어냅니다.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쿠사마는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의 핵심이 죽음 자체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쿠사마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쿠사마는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공포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삶의 끝이라는 사실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예술가가 됐다고 해서 죽음 앞에서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춘을 돌아보고, 사랑을 돌아보고,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쿠사마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였지만, 쿠사마가 인생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80대 후반이던 쿠사마가 자신의 삶을 ‘만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죽음을 깊이 의식하면서도,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사랑과 희망이었습니다.

죽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사랑을 지나 생존과 평화, 희망으로 이동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생존을 향한 기도와 연결하며, 인간들이 서로 벌이는 헛된 싸움과 상처를 멈추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을 전합니다.

사진제공=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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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쿠사마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쿠사마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젊은 쿠사마가 궁금했습니다.

젊은 동양 여성이 1957년 홀로 미국 뉴욕으로 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이후 누드 해프닝과 반전·평화 메시지를 발표하는 행보를 보며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 시대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 흩어진 쿠사마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잡지의 발행연도를 확인하고, 포스터 사진에 찍힌 작은 글자를 확대해 전시 정보를 추적했습니다. 그것을 반복하다 보니 자료를 찾고 확인하는 일이 어느 순간 제 일상이 됐습니다.

Q 수집 과정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

제가 소중하게 보관하던 오타니 쇼헤이 친필 한정판 야구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쿠사마의 1960년대 초판 희귀 잡지를 구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비용 문제로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했는데, 결국 오타니 카드를 판매해 60여 년의 시간을 견딘 낡은 쿠사마 잡지를 선택했습니다.

1960년대 당시 실제 발행된 쿠사마의 자료를 지금 놓치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쿠사마 아카이브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잡지와 책, 전시 포스터, 초대장, 엽서, 신문과 작은 인쇄물까지 함께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시간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기에 주요 작품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1960년대 쿠사마의 포스터 한 장을 펼쳐놓으면 미술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와 여성의 위치, 동양계 예술가가 서구에서 처했던 환경, 베트남전쟁과 반전운동, 전위예술과 팝아트, 출판과 그래픽 디자인까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오래된 종이 한 장이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는 것입니다.

Q. 앞으로 쿠사마 아카이브는 어떤 역할을 계획 중인가요?

지금까지 수집한 수백 점의 자료를 개인 소장품으로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젠가 쿠사마를 연구하는 국내외 연구자와 대학, 미술관의 전시 및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 남기는 것입니다.

쿠사마는 이미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가 됐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삶과 작품을 다시 연구하려는 사람도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세계의 미술관이나 대학, 연구자들이 쿠사마의 특정 시기 자료를 찾다가 ‘그 자료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오래된 종이 한 장으로 보이지만, 10년, 20년 뒤 어떤 연구자에게는 쿠사마의 삶에서 비어 있던 한 부분을 설명해 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해외 미술관이나 대학, 연구자가 ‘이 자료를 어디에서 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자료는 한국의 쿠사마 아카이브에 있습니다’라는 답이 나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 자료를 찾아온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제가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모아놓은 자료가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자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jky197@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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