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동학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해자의 상당수가 부모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2만5739건 가운데 부모에 의한 학대는 2만2106건으로 85.9%를 차지했다. 재학대 비율도 2020년 11.9%에서 2021년 14.7%, 2022년 16.0%로 증가했고, 2022년 재학대 사례 가운데 부모에 의한 사례는 96.5%에 달했다.
아동학대를 막으려면 피해아동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가 다시 부모와 생활하거나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학대를 한 부모의 양육 방식과 심리적 문제를 바꾸지 못하면 재학대 위험도 남는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행위자에게 상담·교육·심리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피해아동은 물론 가족과 아동학대행위자를 대상으로 상담·치료·교육을 실시한다. 문제는 상담실에 들어온 학대행위자가 일반적인 심리상담 내담자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법적 조치에 따라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수영(인하대) 외 연구진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자의 아동학대행위자 상담 경험에 대한 합의적 질적 연구'(〈상담심리교육복지〉)에서 학대행위자 상담 현장의 문제를 들여다봤다. 합의적 질적 연구는 여러 연구자가 면접 내용을 함께 분석해 합의된 결론을 끌어내는 연구 방법이다. 연구팀은 아동학대행위자를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고, 상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이수영(인하대) 외 연구진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자들은 법적 조치로 상담실에 억지로 온 학대행위자를 상대하며 소진과 역할 갈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담자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재학대를 막기 어렵다며 충분한 상담 예산과 신변보호, 전문 수퍼비전 등 구조적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상담자 심층면접..."학대행위자 상담은 무엇이 다른가"
연구진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행위자를 1년 이상 상담한 경험이 있는 상담자 10명을 일대일로 심층 면접했다. 참여자들의 아동학대행위자 상담 경력은 1년 이상부터 10년 이상까지 다양했다.
상담자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지적한 특성은 비자발성이었다. 상담자들은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이 법적 조치에 따른 의무 상담 비중이 높아 상담 동기 자체가 낮은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동학대행위자는 상담 동기나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상담실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일부 학대행위자는 "내가 한 게 무슨 학대냐", "우리도 다 맞고 컸다", "훈육을 안 해서 아이가 잘못 크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아이나 배우자, 양육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상담자들은 학대행위자의 낮은 양육 지식과 부적절한 양육태도, 유년기 결핍·학대 경험의 대물림, 심리·정서적 어려움 등을 주요 취약요인으로 꼽았다. 아동학대에 대한 낮은 인식과 열악한 양육환경, 부족한 사회적 지지체계도 주요 문제로 나타났다.
상담 현장에서는 분노조절 문제와 우울·불안, 알코올 등 중독 문제도 관찰됐다. 상담자들은 일부 학대행위자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거나 충분한 돌봄과 애정을 받지 못해 자녀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반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봤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도 상담실 밖의 중요한 문제였다. 상담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가족·지인이 없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자원조차 부족한 부모들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논문은 학대 문제를 '나쁜 부모의 잘못된 행동'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양육 지식, 정신건강, 과거 학대 경험, 경제적 상황과 사회적 지지체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분석했다.
■ 상담자는 학대에 분노하면서도 가해자를 이해해야 했다
비자발성과 학대 부인 같은 학대행위자의 특성은 그대로 상담자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상담자들은 비자발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오랫동안 굳어진 신념과 양육태도를 바꾸는 데도 한계를 느꼈다. 일부 상담자는 지적 수준이 낮은 학대행위자에 대한 개입,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 학대행위자에게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도 경험했다.
학대행위자를 마주한 상담자는 복잡한 역할 갈등을 겪는다. 아동에게 가해진 학대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담을 위해서는 학대를 한 부모와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학대행위자를 비난하고 가르치려 들면 상담에 대한 저항이 커질 수 있지만, 지나치게 공감하다 보면 학대행위자의 책임 회피나 왜곡된 설명에 끌려갈 위험도 있다.
상담자들이 중요하게 꼽은 태도에도 공감과 단호함 사이의 딜레마가 반영됐다. 상담자들은 학대행위자를 가르치거나 처벌하려는 태도보다 선입견을 배제한 존중과 공감,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봤다. 동시에 학대행위자의 주장에 휩쓸리지 않는 중립적이고 단호한 태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감정노동도 크다. 기존 연구에서도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자는 학대 문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소진과 무력감, 대리외상(피해 사례를 반복해 접하는 과정에서 상담자 자신이 심리적 상처를 입는 현상),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비자발적인 학대행위자를 상대하는 과정에서는 안타까움과 분노, 좌절감까지 경험한다. 그러나 관련 전문교육과 수퍼비전, 사례회의 등 상담자를 지원할 제도적 장치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 "공감만 잘해서도 안 된다"...가정 전체를 읽는 역량 필요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에는 일반적인 상담기술 이상의 전문성이 요구됐다.
상담자들은 학대행위자 개인만 보는 대신 가정 전체의 관계와 강점, 취약성을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부적절한 양육태도부터 정신병리까지 다양한 학대 위험요인을 다룰 수 있는 역량, 객관적인 정보를 탐색하고 분별하는 능력, 상담자가 자신을 돌보고 성찰하는 능력 등을 강조했다. 사례관리 담당자 등 다른 실무자와 협업하는 역량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연구의 핵심은 상담자 개인의 역량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담 효과를 좌우하는 구조적 조건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
■ "24회 상담해야 하는데 예산 없어 줄이기도"...개인 역량보다 구조가 문제
상담자들이 제시한 개선과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개인의 상담기술보다 예산과 근무환경, 조직의 지원체계였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충분한 예산과 지원의 부족이었다. 일부 상담자는 6개월 보호처분 상담이 24회기(24차례)로 정해져 있어도 기관 예산이 부족해 전체 상담을 진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고 진술했다. 한 상담자는 법인의 별도 지원 없이 정부 보조금만으로 기관을 운영하다 보니 사업비를 나눠 치료비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을 전했다.
상담자의 처우와 근무환경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상담자들은 급여와 복지, 신변보호, 소진 예방을 포함한 처우 개선과 충분한 상담공간 확보,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기관 내부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대행위자의 특성과 가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조치와 처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동학대 상담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충분한 처우와 안전, 회복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문성을 지속하기 어렵다. 상담자의 소진을 '자기관리 부족'으로 돌리기보다 고위험 내담자를 장기간 상대하는 업무 자체에 맞는 인력과 보호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 "수퍼비전 필요"...전문가를 지원할 전문가가 부족하다
상담자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에서도 현장 지원체계의 공백이 드러났다.
상담자들은 전문적인 사례 개입을 위한 수퍼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체계적인 사례회의와 원활한 실무자 간 소통,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전문교육 또한 요구됐다.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에 특화된 전문 수퍼바이저를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수퍼비전은 상담자가 경험하는 어려운 사례를 상급 전문가와 검토하고 개입 방향을 점검하는 과정이다. 아동학대 상담에서는 학대행위자의 왜곡된 인식이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는 물론, 상담자의 분노와 무력감, 역(逆)전이(내담자를 향해 상담자 자신의 감정이 얽혀 드는 반응) 같은 심리적 반응까지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에 특화된 전문 수퍼바이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팀은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 수퍼비전 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아동학대 전문 수퍼바이저를 별도로 발굴·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례관리와 심리치료 사이의 정보 단절도 해결 과제로 꼽혔다. 상담자들은 재학대 위험요인을 줄이려면 사례관리 담당자와 상담자가 정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사례회의를 해야 한다고 봤다. 학대행위자의 말만으로 상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의 위험과 변화를 함께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 "좋은 상담자를 뽑는 것"만으로 재학대 막기 어렵다
연구진의 제안은 결국 한 방향으로 모인다.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의 효과를 높이려면 상담자 개인에게 더 높은 전문성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선 아동학대행위자 상담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상담 매뉴얼과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대행위자의 거부적인 태도와 만성적인 문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진과 심리적 외상을 줄이기 위해 동료 상담자 자조모임 등 심리지원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봤다.
논문은 상담자 교육과 수퍼비전을 개별 기관의 재량에 맡기지 말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한편, 충분한 상담 예산과 상담자의 복지·처우를 보장하는 운영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담의 질을 높이려면 상담공간과 인력, 신변보호, 소진 예방, 전문 수퍼비전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행위자의 특성과 가정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법적 조치와 상담·교육도 필요하다. 양육 지식이 부족한 부모와 심각한 정신건강·중독 문제가 있는 부모, 경제적·사회적으로 고립된 부모에게 동일한 상담을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학대 원인을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는 취지다. 상담자의 숙련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동학대 대응의 최우선은 피해아동의 안전이다. 그러나 피해아동이 다시 안전한 가정에서 생활하려면 학대를 한 부모의 행동과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 상담자들은 바로 그 변화의 최전선에 있지만, 높은 전문성과 감정노동을 요구받는 데 비해 상담자를 뒷받침할 예산과 안전장치, 수퍼비전 체계는 충분하지 않았다.
재학대를 막는 책임을 상담자의 역량과 헌신에만 맡길 수는 없다. 아동학대행위자를 변화시키는 상담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상담자를 버티게 하는 구조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 연구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연구논문
이수영·최은별·이민정·신주연(2025).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자의 아동학대행위자 상담 경험에 대한 합의적 질적 연구. 상담심리교육복지, 12(1), 25-51.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