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떠올리는 우울증의 전형적인 모습은 조용히 위축된 사람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도 주로 환자 자신에게 향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의 인식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울증의 영향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스라엘 네게브 벤구리온대학교(Ben-Gurion University of the Negev)에서 스트레스·자아·건강 연구소(Stress, Self, and Health Lab)를 이끄는 골란 샤하르(Golan Shahar, Ph.D.) 교수는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기고문 '우울증이 법정에 들어올 때(When Depression Enters the Courtroom)'에서 우울증이 특정한 조건 아래 공격적 행동과 대인 갈등, 법적 문제로 이어지는 위험 경로에 개입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샤하르 교수는 우울증이 범죄를 직접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핵심은 우울증이 기존 위험 요인과 결합해 갈등이 악화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실린 골란 샤하르(Golan Shahar) 벤구리온대 교수의 기고문에 따르면 우울증은 특정 조건에서 알코올 문제, 만성 스트레스, 관계 갈등 등과 결합해 공격적 행동과 법적 문제의 위험을 키우는 '증폭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샤하르 교수는 우울증 환자를 범죄 위험군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며 조기 치료와 지역사회 정신건강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 '법정신의학적 우울증', "환자를 범죄자로 규정하려는 개념 아냐"
샤하르 교수는 우울증이 법적 문제로 이어지는 경로에 관여할 가능성을 '법정신의학적 우울증(forensic depression)'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법정신의학적 우울증'이라는 개념은 우울증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압도적 다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체포되거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우울증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기보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크다.
샤하르 교수가 던지는 질문은 그보다 구체적이다. 우울증이 공격적 행동이나 가정폭력, 무모한 행동, 법적 책임이 따르는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울증은 수동적인 상태로 보이고 범죄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두 현상의 연결 가능성은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임상 현장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은 단순한 슬픔이나 무기력에 그치지 않는다.
■ 우울증의 다른 얼굴, 과민성·절망감·충동조절 저하까지
우울증에는 과민성, 초조, 절망감, 정서적 고통, 판단력 저하, 충동 조절의 어려움, 수면 장애, 심각한 사회적 고립이 동반될 수 있다.
일부 환자는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지지만, 반대로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환자도 있다. 중립적인 상황을 거절이나 굴욕, 위협으로 받아들이거나 작은 의견 충돌을 배신의 증거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망스러운 대인관계 경험이 "더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절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우울증만으로 공격이나 범죄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 우울증은 대개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 오남용, 만성 스트레스, 경제적 파탄, 관계 갈등, 반복된 굴욕감, 오랜 성격적 취약성과 우울증이 함께 나타날 때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우울증을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기존 위험을 키우는 '증폭 요인'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샤하르 교수는 우울증의 작동 방식을 고혈압에 비유했다. 고혈압이 반드시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위험 요인과 결합하면 발병 가능성을 높이는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우울증 역시 이미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 공격이나 법적 문제로 악화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 엇갈린 연구 결과, "우울증을 범죄 원인으로 단정 못 해"
우울증과 공격적 행동의 관계를 둘러싼 연구 결과는 일관되지 않다. 일부 전향적 종단연구에서는 우울증이 특정 집단에서 향후 공격적 행동이나 비행을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엄격하게 설계된 다른 연구에서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샤하르 교수는 과학적으로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울증을 범죄의 원인으로 단정하거나 우울증 환자를 위험 인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연구 결과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질문 자체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과학은 확정된 답이 나오기 전에 불편한 가능성을 검토함으로써 발전한다. 중요한 과제는 우울증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법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지 밝히는 것이다.
■ 자살 위험 점검 넘어, '갈등 대응의 변화'도 함께 살펴야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자살 위험을 확인한다. 샤하르 교수는 대인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졌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임상 현장에서는 "우울증이 대인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는가"를 확인 질문으로 삼을 수 있다. 나아가 분노와 충동 조절의 변화, 음주와 사회적 고립의 악화 여부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갈등 대응 방식을 살피는 평가는 범죄를 예측하거나 환자를 감시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갈등이 폭력이나 법적 문제로 악화되기 전에 위험 신호를 찾아내고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연결하기 위한 예방적 접근이다.
법은 사람의 마음속 고통이 아니라 외부로 나타난 행동을 평가한다. 정신건강 서비스는 행동이 법적 문제로 이어지기 전에 위험 신호와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 낙인과 배제 아닌, 공중보건과 예방의 관점으로
우울증과 법적 문제의 관계를 다룰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우울증 환자를 범죄 위험군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필요한 접근은 낙인과 배제가 아니라 공중보건과 예방이다.
우울증 자체가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치료받지 못한 우울증이 음주 문제와 만성 스트레스, 경제적 위기, 관계 갈등, 사회적 고립 등과 맞물려 기존 위험을 악화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개인에게 감정과 충동을 스스로 관리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실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에 효과적인 심리치료와 약물치료가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지역사회와 일차의료 현장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비용과 거리, 낙인, 정보 부족 같은 장벽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과 학교, 복지기관, 일차의료기관이 우울증의 초기 신호를 발견해 전문기관으로 연결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음주 문제와 가정 내 갈등, 실직과 채무, 주거 불안처럼 우울증과 함께 위험을 키우는 문제를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 마음속에 머물지 않는 정신질환, 가족·직장 넘어 법정까지
샤하르 교수는 우울증을 슬픔이 잠시 나타나는 일시적인 삽화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울증은 만성화되거나 자살 위험과 신체질환, 다른 정신질환과 함께 나타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질 수 있다. 일부 환자에게는 법적 문제까지 더해질 가능성도 있다.
'법정신의학적 우울증'이라는 관점이 앞으로 과학적으로 뒷받침된다면, 우울증의 영향을 개인의 내면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해질 수 있다. 정신질환의 파장은 가족과 직장, 병원, 지역사회로 퍼져 나가며 때로는 법정에까지 이른다.
법정에 도달한 행동만 처벌하는 것으로는 그 이전에 진행된 위험의 경로를 바꾸기 어렵다.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갈등과 음주, 고립 등 함께 나타나는 위험 요인을 치료하며, 누구나 필요한 시점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우울증과 범죄를 성급하게 연결하지 않으면서도 위험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성급한 단정과 외면 사이에서 잡는 균형이야말로 처벌보다 앞선 예방의 출발점이다.
▶원문 기사 출처
"When Depression Enters the Courtroom." Golan Shahar, Ph.D. 2026.07.23. 〈Psychology Today〉.
김지연(Jee Yearn Kim) Ph.D.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에서 형사정책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법심리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생성형 AI 기술 역기능 및 사용자 위험 요인 대응 정책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 범죄자 위험 평가, 교정 개입 원칙, 형사사법 실무자 조직행동, 스토킹 범죄자 개입 등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