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우 지사는 1919년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1920년 5월에는 임정 간도(間島)파견원으로 활동했으며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했다.
이후 1920년 10월 이후 치타극동공화국 극동부 한인부에서 활동했으며 1937년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 후 ‘조선문법’, ‘조선역사’등을 집필하여 한국어 및 역사를 연구해 보급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황운정 지사는 1919년 함경북도 종성 및 온성 일대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1920년 체포를 피해 중국 길림성 왕청현으로 망명하였고, 1920~1922년 러시아 연해주 연추 지역에서 무장부대의 일원으로 선전공작을 통한 대원의 모집 및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으로 모셔온 독립유공자 유해는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계봉우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지사 부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된다.
김가희 기자 no@lawiss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