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이미지 확대보기유래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림전(儒林傳)과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서한(西漢) 등에 나온다. 한나라 경제(景帝)는 보위에 오르자 정치를 잘 해 볼 의욕으로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불러 모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산동(山東) 출신 원고생(轅固生)이다. 나이는 아흔이나 되는 고령이었으나, 성품이 꼿꼿하고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선비였다. 다른 대신들이 모두 반대를 하였음에도 경제는 그를 등용한다. 원고생은 잘못이 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꾸짖고, 황제 앞에서도 바른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상황이 계속된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함께 등용된 젊은 학자로 공손홍(公孫弘)이란 자가 있었는데, 공손홍은 그러한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한다. ‘원, 늙은이가 분수도 모르고, 저 잘난 것만 알아 야단이로군.’ 물론 원고생은 공손홍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고생은 일부러 공손홍을 불러 세워 간곡히 충고한다. “요즘 들어 학문이 정도(正道)를 잃고 속설(俗說)로만 흐르고 있으니 실로 걱정스럽네. 이런 유행이 계속된다면 학문의 전통이 어디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지겠는가. 다행히도 자네는 젊을 뿐 아니라 학문을 남달리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네. 그러니 부디 바른 학문을 제대로 열심히 익혀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게나. 결코 바른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라고 충고한다. 공손홍은 그 말을 듣고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얼굴이 빨개진다. 공손홍은 당장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제자로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현장으로 돌아와 보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발행한 사망진단서 1장을 놓고 극한의 대립이 거듭되고 있다. 이미 백남기 농민의 경우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1년이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사망하였다. 그런데 그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원인이 심폐정지, 즉 병사라는 것이다. 과거 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한 인사는 물론이고 대한의사협회, 서울대 의대 총동문회 등 의료계 전반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백씨의 사인은 ‘외인사’이며 병사라고 기재된 사망진단서에 오류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한다. 심지어는 의사고시에서 그와 같이 진단서를 작성하면 오답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과 백씨 주치의는 진단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외상성’ 경막하 출혈을 이유로 건강보험 급여 청구를 11차례 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사망진단서 작성 내용과 보험금 청구 내역이 서로 모순된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측은 “진단서 변경은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망진단서와 진료에 대한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진단서 작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마당인데도 말이다. 국가권력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진단서가 작성되었을까? 진실을 떠나서 서울대병원 측이 보여준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왜 사망진단서가 그렇게 작성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병사로 작성된 사망진단서라 하더라도 잘못이 아니라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애매한 언사로 위기를 면하려 할 뿐이다. 최고의 지성인이 보여야 할 전문성과 당당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권력에 아부하면서 국민들을 속이려드는 꼴이 전형적인 곡학아세다.
우리나라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 교수들의 난봉 짓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서 녹조가 창궐할 정도로 수질오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4대강 사업을 밀어 붙이면서 동원된 사람들이 소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대학교수들이다.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학문적 소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지금의 수질오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질오염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입에 발린 소리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권에 빌붙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굽힌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느 행정자치부 장관(지금은 친박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회의원으로 변신)은 자신이 지은 헌법 교과서에 나온 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는 내용을 교과서에 쓴 것이거나 정권에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통합진보당 해산판결에 대하여 노장 헌법교수들도 자신들의 평소 학문적 견해와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도대체 앞으로 자신들의 교과서를 보지도, 믿지도 말라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논란은 또 어떠한가? 그동안 국정교과서에 반대했던 일부 교수들마저도 정권이 추진화는 국정화에 가세하는 꼴이라니 그 아첨의 모습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한계를 모르고 날뛰기 쉽다. 권력은 칼과 같은 것이어서 잘못 휘두르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근대국가에 있어서는 법으로 권력의 행사를 규제한다. 그런데도 권력자는 이러저러한 예를 들어가면서 법망을 탈피해 권력을 남용하려 든다. 이때 권력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등장하는 것이 학자연하는 교수들이다. 잘못된 권력의 행사에 그럴싸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정당화하려 든다. 자신이 배운 지식을 잘못 해석해서 권력의 입맛에 맞추고 자신들은 출세의 도구로 삼는다.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곡학아세를 일삼는 지식인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국이다. 지식인들을 도구로 삼아 권력을 남용하려는 정치인들과 학문적 소신을 버리고 줄을 대어 출세를 지향하는 지식인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한 곡학아세의 세상은 벗어나기 어렵다.
곡학아세를 일삼는 지식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럴싸한 변명으로 감추려 들면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논어(論語)에서도 人誰無過 過而能改 善莫大焉(인수무과 과이능개 선막대언)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잘못했으되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잘하는 일이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좌전(左傳)에서 말한 人非聖賢 孰能無過 過而能改 善莫大焉(인비성현 수능무과 과이능개 선막대언)과 같은 뜻이다. 변명으로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후학들에게 뭐라 가르칠 것인가? 권력에 굴종하면서 곡학아세를 일삼고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추악함은 지식인의 기본적인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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