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신종철 기자]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ㆍ은폐사건 수사의 담당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판사들이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나타내는 가운데, 또 부장판사가 거취를 결정하라며 압박했다.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로부터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됐을 당시부터 최근까지 판사 5명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거나, 거취 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박상옥 후보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구지방법원 유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9기)는 지난 23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갈등의 정의로운 해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판사들의 잇따른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유지원 부장판사는 먼저 “이견 없는 사회는 없다. 다만 이견이 없는 것으로 억압될 뿐이다”라며 “현대 서구는 이견이 없는 사회가 인류에 미친 크나큰 해악을 목도하고 그 반성 위에서 성립되었다. 갈등의 억압으로 고요한 듯 보이는 사회가 아니라,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사회이기에 발전된 사회라고 평가받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법부는 갈등의 평화적 해결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갈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 정의로운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사법작용”이라며 “갈등을 시끄러움으로, 서둘러 봉합돼야 할 무엇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폐기돼야 한”고 말했다.
유 부장판사는 “이유를 묻는 목소리를 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묵살하는 것 또한 ‘결론’이 아니라 ‘이유’가 핵심인 사법의 작동원리와도 부합하지 않으며, 한 번 내린 결론이라고 고집하는 행위 역시 상급심을 통해 잘못을 정정하는 사법작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환기시켰다.
유지원 부장판사는 “모든 일에 사법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며 “적어도 사법 내부의 문제는 사법의 작동원리가 적용될 수 있으며, 사법행정권자 역시 법관이므로 법관답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짚어줬다.
그러면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증거 또한 많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 수사는 수사대상자인 경찰이 맡았고, 검찰의 수사는 불과 4일이었다. 4일. 이후 검찰 수사는 4차례나 더 이어졌는데 이는 곧 처음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사가 계속 이루어진 계기는 스스로의 수사성과가 아닌, 관련자의 양심선언이나 외부의 폭로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ㆍ은폐조작 사건을 지목한 것으로, 당시 검찰의 부실수사를 겨냥했다.
유 부장판사는 “(대법관) 자격은 진실을 밝히지 못한 정당한 이유를, 4일만이지만 충분한 수사였음을, 양심선언과 이어진 폭로에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까닭을 증명할 때 부여되는 것이지, 자격 없음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여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증거는 자격 있음을 증명하는 그때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부장판사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맡은 사건의 결론을 표명하는 수단은 오로지 판결이며, 그만큼 열심히 판결에 모든 것을 담으라는 격언이다. 이를 판결로 말할 수 없는 것에도 침묵하라는 의미로 새길 수는 없다”며 “하물며 대법관의 자격은 사법부의 구성원이 당연히 논의해야 할 문제일 터”라고 의미를 뒀다.
유지원 부장판사는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갈등은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박상옥 후보자가 대법관이) ‘왜 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박상옥 후보가) 대답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갈등은 정의롭게 해결돼야 하기에, 많은 이들이 묻고 있다”며 “(박상옥 후보자가) ‘국민과 바람직한 사법부를 위한 거취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을 밝히고자 불이익을 당했던 사람들과 미래 후손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기에”라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 거취 표명을 촉구했다.
◆ 법원 안팎에서 박상옥 후보자 반대 목소리 높아
한편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법원공무원들뿐만 아니라 현직 판사들의 반대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어 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 한다.
먼저 법원공무원들로 구성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본부장 이상원)는 수차례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게다가 이상원 법원본부장은 두 차례나 국회 앞에서 임명반대 1인 시위를 벌일 정도로 공개적으로 강한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법원본부는 예전 법원공무원노조(법원노조)라고 보면 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1월 박상옥 후보자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했을 당시 수원지법 송승용 판사(사법연수원 29기)는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에 대한 법원 내외부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했다.
송 판사는 그러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이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 취지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대법관 제청을 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월 16일 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사법연수원 31기)는 코트넷에 “박상옥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박노수 판사는 특히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고나서, 과거 독재정권 치하의 고문치사사건 은폐ㆍ축소에 협력했던 검사가 은폐ㆍ축소와 무관할 뿐 아니라 은폐ㆍ축소 기도에 맞선 훌륭한 검사라는 거짓 휘장을 두르고, 대법관에 취임할 것만 같은 절박한 우려를 느꼈다”며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지난 20일에는 인천지법 부천지원 문수생(48) 부장판사가 박상옥 후보자에 대해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본인과 사법부, 나아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도리”라며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문수생 부장판사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반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박상옥 후보자를 과연 우리는 대법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박상옥 후보자에게 재판을 받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법관들은 사법부의 신뢰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의정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4회)가 지난 21일 코트넷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반대 글을 올리며 쐐기를 박았다.
정영진 부장판사는 “(박상옥 후보자는) 대법관은커녕 일반 평판사로도 법원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분”이라고 혹평하며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경우 사법부 신뢰가 어떻게 될 것인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나 사법부 구성원들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심지어 “정치인들이 야합해 대법관 인준 안을 통과시키려 할 경우 사법부 구성원들이 판사회의 개최를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양승태 대법원장께 전달해 사법부 차원의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하거나, 국회에 직접 일선 법관들의 의견서를 전달하는 것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 달라”고까지 강력한 반대 의지를 나타냈다.
한편, 법원 외부에서도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한택근)과 같은 변호사단체가 반대하고 있다. 아울러 참여연대, 민주사법연석회의와 같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까지 강력히 반대하고 있은 상황이다.
유지원 부장판사 ‘박상옥 대법관’ 또 반대…“사법부 위해 거취 결정”
판사들 5명,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강한 반대 입장 또는 거취 표명 요구 기사입력:2015-04-27 16: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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