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L씨는 2005년 6월1일 P씨, 상무와 유럽 출장을 가게 됐는데, P씨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해 미팅을 하고 나오면서 L씨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귀에 대고 ‘상무님 잘 모셔’라고 말했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L씨는 인사그룹장에게 P씨의 성희롱 사실을 알리면서 다른 부서로 이동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사실 여부를 조사한 인사그룹장은 P씨가 성희롱 사실을 부인해 추가 조사를 하지 않고 성희롱 사실이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했다.
이 프로젝트팀은 한 달 만에 해체됐는데, 다른 팀원들은 부서배치 등의 발령이 완료됐음에도, L씨는 업무를 배정받지 못한 채 2006년 1월까지 서울에 있는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거나, 사무실에서 온라인 교육을 받으며 지내다가 2월부터 본사 산하 IR그룹에서 근무하게 됐다.
그런데 L씨와 같은 대리의 지위에 있던 동료들은 2006년 2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수회에 걸쳐 투자자 미팅 등에 참가했으나, L씨는 미팅에 거의 참가한 적이 없고 주요업무에서도 거의 배제됐다.
결국 L씨는 “상사이던 P씨가 성희롱을 했고, 삼성전기는 성희롱사실을 고지 받고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희롱 사실을 고지하자 정당한 업무를 부여하지 않고 조직적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위자료 5억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황현찬 부장판사)는 삼성전기 직원 L씨가 전 부서장 P씨와 삼성전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08가합5314)에서 성희롱 부분에 대해 P씨와 삼성전기에 각각 위자료 200만 원을 배상할 것과, 삼성전기에는 별도로 위자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성희롱 불법행위가 있었던 2005년 6월부터 이번 판결 선고일까지 위자료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해 실제로 L씨가 받게 될 위자료 액수는 더 많다.
재판부는 “P씨가 부서 책임자 지위를 이용해 원고의 엉덩이를 치면서 상사를 잘 모시라고 한 것은 성적 의도를 드러낸 언동에 해당하고, 원고와 P씨의 관계 등에 비춰 볼 때 사회통념상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농담이나 호의적인 언동의 수준을 넘어 원고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남녀고용평등법이 정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성희롱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원고에게 불이익을 준 삼성전기에 대해 2가지 위자료 책임을 물으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먼저 “사용자인 회사는 적절한 예방교육이나 철저한 관리를 통해 직원이 다른 직원을 성희롱하는 행위를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삼성전기는 부서장인 P씨가 출장 중에 원고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해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만큼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위자료 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근로자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주장할 경우 사업주는 진위 여부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사 및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함에도 삼성전기는 원고로부터 성희롱 사실을 고지 받고도 가해자와 상무의 진술만을 청취한 채 진위를 파악하려는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종결해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재발방지대책도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게다가 삼성전기는 원고로부터 성희롱 사실을 고지 받은 직후인 2005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특정 부서에 배치하지 않은 채 발령대기 상태에 머무르게 했고, 이후 새로운 부서 배치 후에도 원고의 지위에 비춰 적절한 업무를 부여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따라서 삼성전기는 원고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이익한 조치까지 취했다”며 “이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입게 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정신적 손해를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어,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