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에 무기징역 선고한 재판부의 고민과 관용

“극형 앞둔 흉악범도 살고자 하는 염원에 사로잡힌 한 측은한 인간” 기사입력:2009-02-17 10:16:06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불과 두 달 만에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또 식당 여주인을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으면서도 구치소에서 동료 수감자를 흉기로 찌른 ‘악성’ 범죄자에게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으나, 법원이 고심 끝에 관용을 베풀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힌 것처럼, 무기징역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판결문에 구구절절이 적시해 눈길을 끈다. 먼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재판부는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극형인 사형에 처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남을 살해하고도 극형을 면하기 위해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며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하고 초라한 몸부림을 보는 듯해 씁쓸하고 허탈하다”며 “이게 살고자 하는 염원에 사로잡힌 한 사람의 측은한 인간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관점”이라고 재판부가 왜 고심했는지를 말했다.

그러면서 뒤늦게 일부 범행을 인정하는 피고인에게 재판부는 “희미한 가능성을 끈으로 피고인을 극형의 우물에서 건져 올리고자 한다”며 “부디 개과천선해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 향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며,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함으로써 비록 구금된 상태로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바라는 재판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랄 뿐”이라고 관용을 베풀며 훈계했다.

◆ 출소 후 불과 두 달 만에 흉악범죄 저질러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OO(45)씨는 지난 2004년 6월 부산지법에서 강도상해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2007년 10월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등 동종 범죄전력이 8회나 있었다.

그럼에도 김씨는 출소 후 불과 두 달 뒤인 12월13일 오후 6시경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에 사는 A(15,여)양의 집에 들어가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던 A양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협박해 반항을 억압한 뒤 현금 1만 2000원을 빼앗고, 강간까지 저질렀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지난해 1월20일 오후 11시 20분께 부산 남구 문현동 B(52,여)씨의 식당에 들어가 흉기로 B씨의 온몸을 32회나 마구 찔러 살해한 뒤 현금 46만원을 갖고 도망쳤다.

심지어 김씨는 이 같은 흉악 범죄로 구속 기소됐음에도 구치소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지난해 2월26일 부산구치소에서 사건 공소장을 받아보고 기분이 좋지 않던 중 같은 방에 수용돼 있던 C(27)씨와 말다툼을 해 앙심을 품게 됐다.

이에 김씨는 이날 밤 11시경 잠을 자고 있던 C씨에게 다가가 플라스틱 식기로 얼굴과 머리를 마구 때리고, 볼펜으로 수회 찔러 전치 3주의 상해를 가하기도 했다.

◆ 부산지법 제5형사부, 피해자들과 가족 위로

이로 인해 김씨는 강도살인, 특수강도강간, 흉기등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최근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자 B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피해자를 무려 32회나 찔러 살해하고 재물을 빼앗는가 하면, 15세의 청소년을 강간하고 재물을 빼앗았으며, 게다가 구금수용 중에도 동료 수감자의 얼굴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가하는 등 모든 범행의 수법이 지극히 잔혹하고 결과 또한 대단히 중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강도살인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참담한 죽음으로 말로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을 피해자의 유족을 생각할 때, 그와 같은 심각한 충격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할 말은 아무 것도 없다”며 “한편으로는 비통하고, 한편으로는 애석할 뿐이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어 “또한 이제 겨우 15세에 불과한 강도강간 피해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 깊은 상처 또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를 위로할 수 없을 것이고, 향후 오랜 기간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어서 안타깝고도 애달픈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A양을 위로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며 뉘우치기는커녕 매번 진술을 번복하면서 범행을 부인하고, 이를 통해 처벌을 면하거나 죄책을 경감받을 궁리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또 “더구나 피고인은 과거 특수절도, 상해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고, 특히 2004년 6월 강도상해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등 상당한 기간 수형생활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범행방법과 공격정도와 결과가 훨씬 중대한 범행을 자행함으로써 피고인에 대한 구금과 교정교육이 아무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보면 심히 한스럽고 절망스러울 따름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검사는 피고인에 대해 극형인 사형을 구하는 의견을 제시했고, 재판부도 그 의견을 대부분 수긍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고 이어갔다.

재판부는 “항간에 사형제 폐지가 논의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수많은 생명을 잔혹하게 해하는 악성 범행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엄정한 정의를 당당히 세움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생명이 중해서 극형을 선고할 수 없다면, 피고인이 자행한 무분별하고 잔인한 수법의 범행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생명은 어쩌란 말인가? 거기다가 살아남은 유족들이 평생토록 겪어야 하는 악몽과 같은 세월은 또 어쩌란 말인가?”라고 되물으며 “피고인의 생명이 중한 만큼 범행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생명이나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유족들의 삶 또한 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고인의 범죄전력과 이 사건 강도살인과 특수강도강간의 범행 내용과 그 악성, 객관적이고 명백한 물증이 있음에도 강도살인의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점 등에서 죄질과 범정이 매우 불량해 향후 성행의 개선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 “사형 마땅하다”면서도 재판부는 왜 무기징역 선고했나?

그러나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인 만큼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있고, 두고두고 생각해도 전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이어 “이는 피해자의 죽음을 결코 가볍게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법정에 서서 중형의 선고를 기다리며, 살고자 하는 염원에 사로잡힌 한 사람의 측은한 인간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관점”이라고 측은지심을 내비쳤다.

아울러 “강도살인을 부인하면서 내세우는 주장을 보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구구한 변명이 대부분이어서, 그로서는 중형을 피하기 위한, 남의 생명은 해하고도 자신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남고자 하는 한 인간의 나약하고 초라한 몸부림을 보는 듯해 씁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나약한 인간을 지적했다.

또 “피고인은 다른 범행도 처음엔 극구 부인하다가 재판이 끝날 무렵에 뒤늦게 범행을 자백한 사정을 보면, 강도살인 범행도 언젠가는 뉘우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아가 그와 같은 반성이 통렬하게 이루어져 성격과 행동의 획기적인 전환과 심기일전의 때가 올 수도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았다”고 기대했다.

재판부는 “이제 그와 같은 희미한 가능성을 끈으로 피고인을 극형의 우물에서 건져 올리고자 한다”며 “피고인은 부디 개과천선해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 향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며,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함으로써 비록 구금된 상태로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바라는 재판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랄 뿐”이라고 훈계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이와 같은 모든 사정을 종합해 오랜 고심 끝에 피고인에 대한 극형의 선고만은 면하기로 하되, 다만 피고인의 범행에 대한 엄중한 죄책을 물어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하는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김씨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반면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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