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기가 죽으면 판정에 불만을 품는 선수가 많아지고, 그러면 경기가 엉망이 될 게 뻔한데, 판사의 기를 다 죽여 놓고 판결의 권위를 어떻게 기대하겠다는 것인지.”
변호사 생활을 15년을 한 뒤 2001년 법관으로 임관한 대전지법 금산군법원 유재복 판사(사시 24회)가 지난 3일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에 올린 ‘판사들을 위하여’라는 글의 일부다.
그는 글쓰기에 앞서 “사건 관련 보신탕 한 그릇 사 주는 사람 없는 시골판사가 뭐 그런 생각을 다하나 하겠지만 늦깎이 퇴물이 법조 사건을 바라보면서 유능한 후배 판사들이 혹시 자신이 죄스럽고 부끄러워 박차고 나가면 어쩌나하는 괜한 걱정이 들어 글을 쓴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재복 판사는 ‘판사들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먼저 “죄스럽고, 부끄럽고,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화가 난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며 말문을 열었다.
유 판사는 “어리석게도 도도히 흐르는 변화의 물결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무리 하찮은 대접이라도 받고자 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몇 몇 분들의 과도한 행동으로 스타일 구겨져버린 자화상이 그려져 자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 “억울해도 도덕선생 같은 말만 골라해 대꾸할 말이 없어”
그는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스럽게 성토하다가 묘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한 매스컴의 기류와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따로 있는데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며 정도가 심한 단체기합을 받던 학창시절의 분노를 떠 올리게 된다”고 외부 시선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유 판사는 외부의 이런 시선을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불안요소로 인한 조급증인지, 월드컵 때마다 검불에 붙은 불길처럼 광란하던 붉은 물결의 타고난 성질 탓인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그렇게 속거나 당하고도 선거철만 되면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해프닝을 이유로 표를 몰아주고, 무슨 사건만 터지면 외눈박이가 돼 오직 한 면에만 포커스를 맞추며 집단린치를 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유 판사는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데 억울해도 도저히 토를 달 수 없는 난도질과 약점만 골라 찍어내는 살벌하고 자극적인 언어선택으로 정말 죽일 놈이 되고 사그리 없애버려야 할 집단으로 매도돼 버린다”며 “어쩌면 그리도 구구절절 도덕선생 같은 말만 골라하는지 교과서적으로는 대꾸할 말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유 판사는 그러면서 “그 동안의 사건은 한 두 사람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불과하고, 어느 집단이건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자주 벌어질 사건들인데도,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뜻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마치 법조전체가 비리의 온상이라도 되는 양 싸잡아 집중포화를 가해 망신을 주고 있으니 너무 심하다”고 섭섭함도 드러냈다.
나아가 그는 “이참에 아예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듯이 까집으며 가을 곡식 도리깨질하듯이 호되게 질타하고, ‘혼 줄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작정하고 나서 숨통마저 조이고 있다”며 “타이틀마저 무시무시하게도 ‘법조비리사건’이라고 못 박고, 앙심이라도 품은 양 모질고 포악하게 퍼붓고, 정말로 개과천선해야 할 망종들로 몰아가고 있다”고 분개했다.
유 판사는 그러나 “먹음직스럽다고 독버섯을 덥석 깨문 사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장담컨대 판사들은 호의와 칭찬만 받으며 살아 와, 사교성은 조금 떨어지고 세상물정에 밝지 못한 자본주의의 열등아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부터의 모범적인 생활이 습성으로 굳어진 사람들로 과욕 부릴지 모르고, 일 욕심 많고, 신중한 사람들로 공직자의 성품으로는 딱 맞는 사람들”이라고 법관을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이런 판사들 중에도 별종이거나 불나방처럼 유혹에 약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어서 이것이 거듭되는 (법조) 사건발생의 이유”라고 분석했다.
유 판사는 “비록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는지는 몰라도 젊은 시절 받은 시험점수하나만으로 차지한 자리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미끼인지 조소인지도 모르거나 모르는 체 하면서 호의와 칭찬에 취해 자신의 몸에는 우성인자만으로 가득 채워진 양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오만이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세상이 변해 20년 전만 해도 ‘영감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에 향수를 가져서는 안 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남다른 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분명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 “무엇으로 판사의 권위 찾아야 할지 정말 난감”
한편 유 판사는 “법관도 이제 안팎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며 “형사사건에서는 양형기준표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재량이 없어지고, 아무리 공정한 재판을 해도 불신의 눈초리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든 탑이 무너진다고, 크고 작은 법조사건이 터질 때마다 애써 이룩한 공적이 하루아침에 시시포스(Sisyphos)의 돌처럼 곤두박질을 치어 늘 제자리인 것 같다”며 “거기다가 영감자리는 고사하고 판사위치마저도 애매해져 버려 이래저래 기 죽는다”고 아쉬워했다.
유 판사는 “심판의 기가 죽으면 판정에 불만을 품는 선수가 많아지고, 그러면 경기가 엉망이 될 게 뻔한데 판사의 기를 다 죽여 놓고 판결의 권위를 어떻게 기대하겠다는 것인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판사가 특권층은 아닐지라도 법치를 바로 세우는 바로미터(barometer)의 역할은 해야 하고, 그러자면 긍지를 갖고 당당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의심을 받고 더 나아가 부패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으니, 무엇으로 판사의 권위를 찾아야 할까 정말 난감하다”고 한탄했다.
유 판사는 그러면서도 “밖을 보아도 캄캄, 안을 보아도 막막, 사면초가가 따로 없지만 정직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판사들이여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며 “이제는 자긍심과 불편부당, 공정성만이 권위의 원천”이라고 당부했다.
“법관 기 죽여 놓고 어떻게 판결 권위 기대해”
유재복 판사 “정의감에 불타는 판사들 기죽지 말고 힘내라” 기사입력:2006-08-07 18:21:51
<저작권자 © 로이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로이슈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 독자는 친근하게 접근할 권리와 정정ㆍ반론ㆍ추후 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메일:law@lawissue.co.kr / 전화번호:02-6925-0217
주요뉴스
핫포커스
투데이 이슈
투데이 판결 〉
베스트클릭 〉
주식시황 〉
항목 | 현재가 | 전일대비 |
---|---|---|
코스피 | 2,556.61 | ▼8.81 |
코스닥 | 717.24 | ▼9.22 |
코스피200 | 338.74 | ▼0.32 |
가상화폐 시세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36,966,000 | ▲323,000 |
비트코인캐시 | 530,500 | ▲2,000 |
이더리움 | 2,616,000 | ▲8,000 |
이더리움클래식 | 24,070 | ▲100 |
리플 | 3,189 | ▲16 |
이오스 | 974 | ▲7 |
퀀텀 | 3,121 | ▲25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37,000,000 | ▲380,000 |
이더리움 | 2,618,000 | ▲11,000 |
이더리움클래식 | 24,060 | ▲130 |
메탈 | 1,208 | ▲5 |
리스크 | 792 | ▲6 |
리플 | 3,191 | ▲16 |
에이다 | 999 | ▲9 |
스팀 | 218 | ▲2 |
암호화폐 | 현재가 | 기준대비 |
---|---|---|
비트코인 | 137,060,000 | ▲300,000 |
비트코인캐시 | 531,500 | ▲1,500 |
이더리움 | 2,616,000 | ▲7,000 |
이더리움클래식 | 24,040 | ▲40 |
리플 | 3,190 | ▲16 |
퀀텀 | 3,102 | ▲37 |
이오타 | 296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