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대리운전기사 사망 뺑소니…‘살인 고의’ 인정

1심과 항소심, 차량 주인 ‘살인의 고의 없었다’는 판단 뒤집고 파기환송 기사입력:2012-12-12 12:04:34
[로이슈=법률전문 인터넷신문] 술에 취한 차량 주인이 자신의 폭행으로 도망가는 대리운전기사를 승용차로 후진해 들이받아 숨지게 한 ‘대리운전기사 사망’ 사건에서 1심과 항소심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차량 주인에게 살인 혐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술을 마신 A(42)씨는 지난 2010년 6월 경기도 구리에서 일산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대리운전기사 B씨를 불러 동료와 함께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서울외곽순환도로를 가다가 운전 중인 B씨를 폭행했다.

이에 B씨가 불암산 톨게이트 근처에서 차량을 갓길에 정차했음에도 A씨의 폭행은 이어졌고, B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차량에서 내렸다. 그럼에도 폭행하려해 B씨가 후방으로 도망치자, A씨는 승용차에 타 빠른 속도로 50m를 후진해 B씨를 승용차로 쳤다. B씨는 차량과 가드레일 사이에 끼었고, 머리 등을 심하게 다친 B씨는 숨지고 말았다.

A씨는 이후 자신이 직접 운전해 가다가 자양동 청담대교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오던 승용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냈고, 이어 중앙선을 침범해 불법 유턴하다 길가에 정차 중인 다른 승용차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도 그대로 도주했다. 이후 검거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3%의 술에 취한 상태였다.

검찰은 A씨를 살인, 도주차량, 운전자폭행,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인 의정부지법은 2010년 12월 A씨에게 살인 혐의를 뺀 나머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사회봉사 80시간 및 준법운전강의 40시간 수강을 명했다.

살인과 관련, 재판부는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고속도로 갓길이고 곡선구간으로서 다른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곳이고, 갓길 자체는 폭이 좁아 빠른 속도로 후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1m 정도 간격을 두고 나란히 걸어가던 동승자(A씨 동료)를 충격하지 않고 피해자만을 살해할 의도로 정확히 충격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범행 이후에도 음주상태에서 계속 운전해 자신의 집과 다른 방향인 청담대교 남단에서 두 차례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해 자신의 집에 도착한 후 차를 주차하고 집에 들어가 잠을 자는 등 범행 이후의 행적도 살인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사후행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피해자를 차로 충격했다는 것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항소했으나, 서울고법은 2011년 6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320시간 및 준법운전강의 40시간 수강을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승용차를 후진해 피해자를 충격한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음에도 구호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사망에 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대리운전기사를 치어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차량주인 A(42)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운전을 시작한 것이 피해자를 충격할 의도가 아니라 집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면 전방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으므로 그냥 앞으로 진행하면 되는데도, 굳이 고속도로 갓길에서 50미터를 후진한 점, 또 승용차에는 수동변속장치가 부착돼 있어 전진과 후진의 기어변속 위치가 전혀 달라서 피고인이 전진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후진 기어를 조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더욱이 충격한 사고지점으로 가는 갓길은 굴곡이 있어서 실수로 핸들을 조작해 후진해 가기는 어려운 점, 피해자의 머리가 부딪친 승용차의 뒷유리가 박살이 나고 피해자가 경추골절, 두부손상골절 등의 상해를 입은 점에 비춰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후진해 피해자를 강하게 충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인이 범행 이후 20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범행으로 인해 뒷유리가 파손된 승용차를 운전해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를 2건이나 일으키고도 그대로 도주했으며, 범행 시각으로부터 3시간 30분 정도 지나서야 자신의 집에 도착한 점도 의문을 가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유 없이 피해자를 폭행하는 등 적의를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범행 당시 반드시 피해자를 살해할 목적이나 계획적으로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승용차로 피해자를 강하게 충격해 승용차와 가드레일 사이에 끼이게 하려는 의도는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봤다.

그러면서 “따라서 피고인은 그와 같은 행위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 또는 위험이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거나 예견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이 피해자를 충격할 당시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위배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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