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후에도 임신됩니다.”
한국에서라면 난임부부에게 쉽게 들을 수 없는 이 말이 지난 8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난자공여 설명회에서 나왔다. 대만 홍지 난임병원 장홍지 원장은 이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한다면 임신과 출산은 시간의 문제이지 누구나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폐경을 눈앞에 두고 낮은 임신 가능성에 자신의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아낌없이 투입해온 한국의 고령 난임부부에게 “폐경 후에도 임신됩니다”라는 말은 절망의 터널 끝에서 만난 빛처럼 들릴 수 있다.
장홍지 원장이 한국 고령 난임부부를 대상으로 ‘폐경 후 임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는 대만의 난자공여 제도와 의료환경이 배경에 있다.
대만은 보조생식술을 이용하는 여성에게 법으로 정한 명시적인 상한 연령을 두고 있지 않다. 폐경 이후 여성도 의학적 판단에 따라 난자공여를 통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 있다.
자신의 난자로 임신을 시도하기 어려워진 이후에도 기증 난자를 통한 임신의 길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국내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대만이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권 난임부부의 난자공여 선택지로 부각되는 데는 제도뿐 아니라 지리적 접근성과 기증자 정보의 특성도 작용한다. 한국에서 가까워 유럽에 비해 이동과 장기 체류 부담이 적고, 대만에서는 수혜자가 기증자의 인종과 피부색, 혈액형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증자와 부모·아이의 외형적 유사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환자들에게는 이런 조건도 난자공여 국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비용 역시 해외 시술을 결정할 때 고려되는 요소다. 대만의 난자공여 비용은 유럽보다 반드시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한국에서 가까워 항공료와 체류에 따른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한국어 상담과 국내 사전검사 등 한국인 환자를 겨냥한 서비스까지 더해지면서 대만 난임 의료기관들이 한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이 가운데 홍지 난임병원은 대만 난임 의료기관 중 한국 진출을 선도해온 곳으로 꼽힌다. 2012년 문을 연 홍지는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 난자공여 설명회를 개최하며 한국인 환자들에게 대만의 난자공여 시스템을 알려왔다.
장홍지 원장은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 생식의학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난자 동결 기술을 주요 경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홍지는 일본 시장을 먼저 공략한 뒤 한국으로 진출했으며, 현재 한국어 페이지와 한국인 직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환자는 국내에서 필요한 검사를 먼저 진행하고 결과를 대만으로 보내 시술 일정을 잡을 수 있다. 이식 전 초음파와 혈액검사 등 중간 검사는 국내 산부인과에서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귀국 후 검사를 위한 국내 백업 병원 연계도 제공한다.
체류기간을 줄이는 것도 홍지가 한국인 환자에게 제시하는 특징이다. 병원 측은 난자공여를 위해 대만에 장기간 머물 필요가 없으며 이식 과정은 2~3일 정도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도 장기간 휴가를 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9월에는 또 다른 대만 난임 의료기관이 서울을 찾았다.
누와 난임병원은 지난 9월 19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대상 난자공여 설명회를 열었다. 현장에서는 ‘대만 대규모 생식의료 전문센터’를 전면에 내걸고 시험관아기와 난자동결·정자동결, 난자공여·정자공여 등을 주요 진료 분야로 소개했다. 타이베이·타오위안·타이중 등 3곳의 생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제 환자가 누적 1000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설명회에서 누와가 강조한 것은 규모와 설비를 바탕으로 한 난자공여 시스템이었다. 생식수술부 주임 장재팅 원장과 유전학부 주임 심쓰유 원장이 직접 발표에 나섰고, 병원 측은 실시간 관찰이 가능한 배양기 18대를 운영하면서 하루 144회 배아를 촬영하고 AI를 이용해 배아 등급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자체 난자은행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동결 난자은행은 한국인 환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수단으로 소개됐다. 신선 난자는 기증자의 생리 주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시술 일정이 기증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동결 난자는 확보된 난자의 수를 미리 확인한 뒤 수혜자 부부의 일정에 맞춰 진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누와가 첫 방문과 이식 방문 모두 2박3일을 권장 일정으로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시스템을 전제로 한 것이다.
누와 설명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지방에서 서너 시간에 올라와서 서울의 난임병원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만이라면 경제적인 부분이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해외라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3년 진료분 기준으로 전국 난임시술 의료기관 204곳 가운데 96곳, 47.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한국인 환자를 겨냥한 접근성도 별도로 강조했다. 한국어 상담과 카카오톡을 통한 실시간 질의가 가능하고, 국내에서 필요한 사전검사를 받은 뒤 대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난자공여를 위해 장기간 해외에 머물러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한국에서 준비한 뒤 두 차례 짧은 일정으로 대만을 오가는 방식이다.
또다른 참가자는 "유튜브 광고를 보고 참가하게 됐다"라며 "시험관 시술이 지속적으로 실패해 낙담을 한 상태인데 여기서 한국어 서비스와 카톡 대화창을 통해 질의를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비용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난자공여 비용은 61만~63만 대만달러로 한화 약 2590만~2680만원 수준이며 PGT-A와 항공료·숙박비는 별도다. PGT-A는 배아 한 개당 2만2100대만달러로 안내했다.
병원 측은 자체적인 의료 성과 수치도 공개했다. PGT-A 배아 생검 성공률 99.1%, 난자 동결 생존율 97.2%, 난자공여 누적 임신율 92.7%라고 밝혔다. 다만 92.7%는 병원이 제시한 ‘누적 임신율’로 생아 출산율과는 다른 지표다.
누와의 한국 시장 공략은 의료서비스의 현지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발표 마지막에는 “이번 추석에 누와와 함께 난자공여 여정을 시작하신다면 내년 추석에는 아기를 품에 안고 명절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난자공여의 비용과 시술 과정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추석’과 ‘가족’을 난자공여 일정과 연결한 것이다. 치료에 필요한 시간을 한국의 명절과 맞물려 제시하면서 한국인 환자가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설명한 것으로, 대만 난임 의료기관의 한국 시장 공략이 의료기술과 비용뿐 아니라 문화와 정서를 겨냥한 마케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원장은 자신들도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낳았다고 밝혔다. 장재팅 원장은 "치료 방법을 바꾼다고 해서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장재팅 원장이 말한 ‘다른 길’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열려 있는 길은 아니다. 난자공여를 선택할 수 있는지는 그 나라가 인공생식과 기증 난자의 사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과 대만은 이 지점에서 출발부터 달랐다.
◆ 생식세포 관리에서 시작된 한국, 인공생식 제도로 출발한 대만
한국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2004년 제정돼 2005년부터 시행됐다. 체세포복제와 인간배아 연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때였다. 법은 배아의 생성과 연구, 유전자검사 등을 규율하고 생식세포의 채취와 기증에 관한 관리 기준도 두고 있다.
난자 기증에는 서면동의와 건강검진 등이 요구되고, 같은 기증자에게서 난자를 채취할 수 있는 횟수도 제한한다. 금전 등을 대가로 난자나 정자 또는 배아를 제공하거나 이용하는 행위와 이를 유인·알선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하지만 난자공여를 받으려는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시술을 받을 수 있는지, 기증 난자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하나의 인공생식 체계로 정리한 법은 없다.
대만은 2007년 「인공생식법」을 별도로 제정했다. 불임 부부와 인공생식으로 태어난 자녀, 기증자의 권익을 법의 대상으로 두고 인공생식 자체를 하나의 법률로 규율했다.
법은 인공생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혼인한 부부로 한정하고, 아내가 자신의 자궁으로 태아를 임신·출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한다. 의료기관의 검사와 평가를 거쳐 시술에 적합해야 하며, 부부 중 한 명에게 불임증이나 당국이 정한 중대한 유전질환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도 둔다.
기증 난자를 이용할 때 필요한 동의와 공증, 기증자 정보의 제공 범위 등도 법에 담겼다.
두 나라 모두 생식세포와 기증자를 관리하지만, 법의 대상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이 생식세포의 채취와 기증 과정에서 지켜야 할 기준과 금지행위를 정했다면, 대만은 인공생식을 이용하는 부부의 자격과 시술 절차까지 함께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는 난자공여로 시술을 받을 사람의 자격과 절차를 정한 조항이 없다. 두 법의 이 같은 차이가 20여 년 뒤 한국과 대만의 서로 다른 현실을 만들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난 2026년 8월, 서울의 한 회의실에서 대만 병원의 원장은 폐경 후에도 임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부담을 감수한다면 임신과 출산은 시간의 문제일 뿐 누구나 가능하다고 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수년간 노력했으나 국내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며 "대만의 난자공여 시술이 내가 찾은 마지막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진료받을 곳을 찾아 국경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 이 기사는 기사 작성 과정의 일부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했으며, 기사 내용의 정확성과 책임은 본사에 있습니다.
편도욱 로이슈 기자 toy1000@hanmail.net
[기획시리즈 ③] 난자공여 | 대만 ‘폐경 후에도 임신됩니다’… 한국 공략 나선 난임병원들
[제작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입력:2026-10-01 09: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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