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슈 진가영 기자] 설계 업무를 하는 회사라면 한 번쯤 솔리드웍스, 카티아, 오토캐드, 매트랩, 마스터캠, 크레오 같은 프로그램 이름이 적힌 내용증명을 받아봤거나, 주변에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최근 이들 고가 설계·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에 대한 저작권 단속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내용증명이 단순한 경고성 문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응을 미루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손해배상을 하게 되는 사례가 실무에서 상당히 많다.
저작권법상 프로그램을 정품 라이선스 없이 사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복제권 침해다.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은 저작재산권을 침해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고, 이는 개인뿐 아니라 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경우 그 법인에게도 함께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다(같은 법 제141조 양벌규정). 다만 법인이 해당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상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이 양벌규정에 따른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단서도 함께 두고 있다. 즉 회사가 평소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현황을 점검하고 무단 설치를 막기 위한 관리를 해왔다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소명할 수 있는지가, 회사 차원의 형사책임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손해배상 역시 만만치 않다.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은 저작권자가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 쉽게 말해 정품 라이선스 가격에 상응하는 금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법원이 프로그램 정가 전액에 가까운 금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한 사례도 있다. 여기에 더해 저작권법 제125조의2에 따른 법정손해배상 제도를 이용하면, 실제 손해액 입증 없이도 침해된 프로그램 하나당 1천만원, 영리 목적의 고의 침해라면 하나당 최대 5천만원까지 청구할 수 있다. 업무용으로 여러 카피를 무단 사용한 경우라면 이 금액이 카피 수만큼 곱해질 수 있어, 최종 청구 금액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함정이 하나 있다. 저작권법 위반죄는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이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상습적으로 복제 등의 방법으로 침해한 경우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같은 법 제140조 단서 제1호). 회사 업무를 위해 설계 프로그램을 무단 사용한 경우라면 대부분 영리 목적으로 평가되기 쉬워, 저작권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형사처벌 자체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합의금만 내면 끝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합의부터 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내용증명을 받았을 때 가장 위험한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적 효력이 없는 문서라고 판단해 아예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겁에 질려 저작권자 측이 제시하는 합의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용증명 자체는 그 문서만으로 법적 강제력을 갖지는 않지만, 이를 무시하면 정식 소송이나 형사고소, 나아가 압수수색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실무상 드물지 않다. 반대로 충분한 검토 없이 상대방이 제시하는 금액을 그대로 수용하면, 실제 사용 카피 수나 사용 기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지급하게 될 위험이 있다. 어느 쪽이든 정확한 법리적 검토 없이 혼자 판단해 대응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이러한 흐름은 설계 프로그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토렌트를 통한 영화·음악·프로그램의 무단 공유는 오래전부터 단속 대상이었고,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폰트(서체 프로그램) 파일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캐릭터나 디자인 이미지를 허락 없이 상업적으로 활용했다가 저작권 침해 시비에 휘말리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폰트는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 보호되므로, 상업용 게시물이나 제품 포장에 무심코 사용한 폰트 하나로도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된 결론은 같다. 저작권 침해 시비에 휘말렸다면 문서를 받은 즉시 혼자 판단해 대응하기보다, 실제 침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청구 금액이 법리적으로 타당한 수준인지, 형사처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전문가와 함께 진단받는 것이 먼저다. 초기 대응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금액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내용증명을 받은 순간부터 저작권 분야를 다뤄본 변호사와 상담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움말 법무법인 태림 서울 주사무소 김선하 대표변호사
진가영 로이슈(lawissue) 기자 jky197@lawissue.co.kr
저작권 침해, 상대가 부르는 합의금을 그대로 주면 안 되는 이유
기사입력:2026-09-11 10: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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