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자이자 시애틀 퓨젯사운드 VA(재향군인 의료체계)에서 연구 중인 앤드루 드벤도르프(Dr. Andrew Devendorf) 박사는 "모든 답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며, '용기 있는 경청(brave listening)'을 제안한다. 충격적인 고백 앞에서 섣부른 조언이나 문제 해결로 대화를 덮기보다, 상대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듣는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취지다.
드벤도르프 박사는 자살예방을 전문으로 하며, 환자가 연인·친구·가족에게 처음으로 자살 생각을 털어놓는 장면을 수차례 지켜봐 왔다고 밝혔다. 드벤도르프 박사는 "자살 충동 고백 자체는 중요한 신호"라며 "극단적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자살 예방 가능성도 커진다"고 강조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창피함,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자살 생각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드벤도르프 박사는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기고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을 털어놓았을 때 도움이 되는 대화 원칙을 제시했다.

시애틀 퓨젯사운드 VA의 드벤도르프 박사(2026) 연구에 따르면, 자살 충동을 고백받았을 때 부정·축소·섣부른 해결 시도 등 5가지 즉각 반응이 오히려 대화를 차단하고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많은 이들이 창피함과 두려움 때문에 자살 생각을 숨긴다"며 "판단 없이 듣고, 곁에 머무는 '용기 있는 경청'이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본 이미지는 기사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미지 확대보기주변의 누군가 한 '나 죽고 싶어'라는 고백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뒤의 반응이다. 선의에서 나온 말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으로 전달돼, 이후 더 숨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드벤도르프 박사는 대표적인 '해로운 즉각 반응'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부정(denial) :자살 생각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반응이다.
- "넌 절대 그런 일 못 해. 살 이유가 얼마나 많은데."
- "관심 끌려고 그러는 거잖아."
- "지금은 이런 얘기 못 듣겠다."
- "그럼 우리 관계가 불행하다는 거야?"
- "왜 나한테 이래?"
- "내가 나쁜 부모였나 봐."
- "과장하지 마."
- "나도 그랬어. 정신 차려."
- "술 마셔서 그래. 내일이면 나아져."
- "스트레스 받는 건 알고 있었어. 이제 이렇게 하자."
- "그럼 당장 헤어지고 이사해."
- "운동해 봐. 난 그게 효과 있었어."
곧바로 응급서비스를 호출하겠다고 하면, 당사자가 "입원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껴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 다만 '임박한 위험'이 의심될 경우에는 예외로, 즉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 '용기 있는 경청'이란… "조언·설득 대신, 상대의 필요에 집중"
'용기 있는 경청'은 자살학 전문가이자 심리치료사인 스테이시 프리덴탈(Stacy Freedenthal) 박사가 정리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핵심은 주제를 바꾸거나, 훈계·조언·안심시키기·설득으로 대화를 덮으려는 유혹을 견디고, '상대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프리덴탈 박사는 용기 있는 경청을 "두렵더라도 질문하는 용기"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려는 '해결 본능' 대신, 연민·인내·감사의 신호를 말과 태도로 보여주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모든 정답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그 자리에 머물며 진짜로 듣는 것이다." 프리덴탈 박사는 "무슨 말을 할지에만 몰두하면 정작 듣지 못한다"며, 대부분의 경우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듣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용기 있는 경청' 실천 문장
드벤도르프 박사는 실천 원칙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① 연민·공감 : 따뜻함과 이해, 그리고 상대의 관점을 헤아리려는 태도를 보인다.
- "지금 많이 벅찬 상태로 느껴져."
- "얘기를 들어보니 많이 막혀 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 맞아?"
- "요즘 정말 많은 일을 겪고 있구나."
- "내가 곁에 있어. 대화에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어."
- "네가 잘 지내는지가 내게 중요하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알고 싶어."
- "전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가능하다면 조금 더 들려줘."
- "솔직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 "이런 얘기 꺼내기 어렵다는 거 알아. 그래도 중요해."
- "나에게 말해줘서 정말 의미 있어. 나는 전혀 몰랐어."
- "그 정도로 힘들다는 뜻이겠지. 조금만 더 말해줄래?"
- "가능하다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들려줘."
-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자살 생각을 들었을 때 두렵고 압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드벤도르프 박사는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 가지 원칙만 실천해도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대화를 끊지 않고 안전하게 이어가도록 돕는 것이 예방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 도움 요청 안내(중요) ※
만약 본인 또는 주변 사람이 자살을 고민하고 있거나 "지금 당장 위험"이 의심된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즉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24시간)
- 정신건강 위기상담 1577-0199
- 긴급 상황에서는 112(경찰) / 119(구급)
"Brave Listening for Suicidal Thoughts: Helping a Loved Ones" Andrew Devendorf, Ph.D., 2026.01.22. <Psychology Today>.
▶ 원문에 언급된 자료 출처
Freedenthal, S. (2023). Loving Someone with Suicidal Thoughts: What Family, Friends, and Partners Can Say and Do. New Harbinger Publications.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