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폭력은 단순히 선후배 간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 신체적·언어적 폭력은 물론, 성추행과 성폭력, 데이트 폭력, 집단 따돌림, 그리고 SNS를 통한 사이버 폭력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폭력을 경험한 집단이 성인이 된 뒤에도 폭력을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 단계에서의 예방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연정(영남대)·문명현(이화여대)·박지호(경희대)·김명주(영남대) 연구진은 ‘대학생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개선을 위한 예방대책 방안 연구’(<한국청소년연구>)를 통해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예방대책 연구를 진행했다.

지연정·문명현·박지호·김명주/영남대·이화여대·경희대(2023)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467명 중 28.9%가 학교폭력을 목격하고 8.6%가 피해를 경험했으며, 피해자 97.5%가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대학의 위계문화와 권력관계가 폭력을 재생산한다고 진단하며 교육·인식·권력구조·개인 차원의 종합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미지 디자인=로이슈 AI 디자인팀
이미지 확대보기■ 신입생 괴롭히는 ‘강제 심부름’ ...위계문화가 폭력을 재생산한다
2021년 7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전국 4년제 대학생 46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28.9%(135명)가 학교폭력을 목격했고, 8.6%(40명)가 피해 경험을 보고했다. 가해 경험은 0%였지만, 이는 ‘성인 학생’이라는 정체성과 보복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 유형별로는 언어폭력 목격 비율이 68.9%로 가장 높았고, 이어 성추행·성폭력 목격(32.6%)이 뒤를 이었다. 초·중·고 조사에서 성폭력 비율이 4.3%에 불과했던 것과 달리 대학에서는 이성 교제와 데이트 폭력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해석된다. 피해 경험 역시 언어폭력(48.4%)이 가장 높았고, 집단 따돌림(14.1%), 강제 심부름(10.9%)이 뒤를 이었다.
장소는 주로 강의실이었다. 목격 경험의 78.4%, 피해 경험의 51.6%가 강의실에서 발생했다. 시간대는 오후 6시 이후와 시험 전후에 집중됐다. 특히 1학년 신입생은 언어폭력 외에도 ‘강제 심부름’ 피해 비율이 높아, 학내 위계문화가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97%가 신고하지 않는 현실... 대학의 침묵
더 심각한 문제는 폭력이 발생해도 대응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격자의 66.3%, 피해자의 97.5%가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미신고 사유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32.1%), ‘관행이라서 또는 대수롭지 않아서’(26.4%), ‘보복이 두려워서’(22.6%) 순이었다. 이는 초·중·고 신고율이 90%를 넘는 것과 대비되며, 대학은 사실상 방관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응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절반 이상(57.1%)이 ‘가해자도 같은 피해를 겪게 하길 원한다’는 응보적 처벌을 요구했다. 피해가 단순한 사건을 넘어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음을 드러낸다. 실제로 피해 후 대인기피증(37.5%), 휴학 고려(33.3%), 수면장애·우울증(16.7%) 등이 보고됐고,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응답도 12.5%에 달했다.
■ 근본적 대책: 교육 · 인식 · 권력구조 · 개인차원
연구진은 대학생 6명과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대학생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네 가지 차원의 개선책을 도출했다.
- 교육 차원
대학의 인권센터는 현재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치중돼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폭력 전반을 다루는 기구로 확대돼야 한다. ‘성폭력방지법’과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른 의무교육도 성폭력만이 아닌 ‘대학생 폭력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 사회 인식 차원
대학 내 전담기구 부재와 교수진의 소극적 태도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연구진은 원스톱 신고 시스템, 교수-학생 간 개방적 소통 구조,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을 제안했다. 피해자와 목격자의 신고 활성화를 위해 목격자 신원 보호와 불편 최소화 방안을 강화해 신고율을 높이고, 신속 대응으로 연쇄적 발생을 막아야 한다.
학교는 전담기구를 설치해 대학생을 빠르게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피해 학생 중심의 적극적 사건 처리와 무관용 원칙에 따른 가해자 처벌 강화로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누군가보다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공격성과 방어적 행동이 ‘당연한 결과’처럼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부는 ‘폭력 없는 캠퍼스’를 기조로 삼고, 폭력 가해 경험자에 대한 취업 제한과 같은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도 제시했다.
- 권력구조 차원
연구진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형 폭력을 끊기 위해 대학은 공정하고 평등한 관계를 보장하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 개선이 절실하다.
- 개인 차원
일부 피해자는 복수심과 공격성을 내면화한 채 살아간다고 고백했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피해자 지원뿐 아니라, 가정 단계에서의 인성·부모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 성인이라고 방치할 수 없다
대학생의 학교폭력은 초·중·고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폭력과 권력형 폭력이 두드러지고, 신고율은 극히 낮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인간관계 속 권력과 관행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연구진은 “대학생 폭력 문제는 청소년기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며, 교육·도·문화적 개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대학생이 성인이라는 이유로 방치해온 폭력,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연구논문
지연정·문명현·박지호·김명주(2023). 대학생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개선을 위한 예방대책 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연구, 34(2), 33-65.
김지연(Jee Yearn Kim) Ph.D. 독립 연구자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형사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범죄 행위의 심리학(Psychology of Criminal Conduct), 범죄자 분류 및 위험 평가(Offender Classification and Risk Assessment), 효과적인 교정개입의 원칙(Principles of Effective Intervention), 형사사법 실무자의 직장내 스트레스 요인, 인력 유지 및 조직행동(Workplace Stressors, Retention, and Organizational Behavior of Criminal Justice Practitioners), 스토킹 범죄자 및 개입 방법(Stalking Offenders and Interventions)이다.
김지연 형사정책학 박사 cjdr.kim@gmail.com








